※ ORAS 마적 드림. 오리주 주의.
아무 말 없이 우리는
written by Esoruen
단언컨대, 비담은 이 마그마단에서 생활하며 눈에 띄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비록 자신은 연구자지만 제 우수함을 증명 받고 싶다거나 성공하고 싶다는 욕구는 없다. 궁금하니까 공부하고, 공부하다 보니 연구원이 되었다. 연구하던 걸 정리해 논문으로 냈더니 관심을 보이는 이가 있었고, 그렇게 마그마단에 들어왔다. 원인과 결과만 보면 말이 안 되는 듯 보이는 서사도 이렇게 나열해 보면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지. 나름의 목표를 가진 다른 단원들과는 다르게 그녀는 정말로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하다가 이곳에 흘러들어온 거였고, 그걸 아는 자는 극소수에 불구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연구나 하면서, 가끔 리더 마적이 원하는 자료를 주기만 하면 된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과연 집단에서 눈에 띄고 싶어 할까. 오히려 그녀는 최대한 제가 이목을 끌지 않기를 소망했다. 모두가 가진 이상과 다른, 제 진정한 목적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하지만 비담의 바람과는 달리, 그녀는 이미 마그마단에서 너무나도 눈에 띄는 존재였다.
리더 마적이 직접 데려온 사람. 아침 연설에 빠져도 아무 소리도 듣지 않고, 가끔 리더가 직접 만나러 가기까지 하는 연구원.
본인이 아무리 튀는 행동을 하지 않아도, 집단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곁에 머문다면 자연스럽게 주목받게 되어버리는 게 세상의 이치. 언제나, 라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높은 확률로 비담의 곁에는 마적의 그림자가 있었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기에, 리더가 저렇게까지?’ 처음에는 그렇게 의문을 가지는 조무래기가 대부분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들 중 대부분은 마적의 관심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그란돈에 대한 연구 자료를 쑥쑥 내뱉는 부하라면 관심을 쏟는 게 당연하지. 그란돈을 깨우는 것과 그 깨어난 그란돈을 원시회귀 시켜 조종하는 것이 마그마단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는 자라면, 이 편애를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이라는 건, 아닌 사람도 있다는 의미.
몇몇 조무래기들은, 불손하게도 감히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하기도 했다.
‘분명 리더 마적이 뭔가 책잡힌 게 있을 거야. 그러니 다 봐주는 거지.’ ‘둘이 사귄다던가?’ ‘그런 것 치곤 별거 없지 않아? 둘이 하는 이야기 보면 업무이야기 뿐이잖아?’ ‘그건 모르지. 둘만 있을 땐, 어떨지.’
소곤소곤. 암암리에 퍼져가는 소문은 언젠가는 당사자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
‘눈치도 좋네.’
물론 사귀는 건 아니지만, 평범한 관계는 아니지. 결국엔 문제의 소문을 듣고 만 비담은 반쯤 태운 담배를 재떨이에 내던지고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쓸데없는 소문이 퍼지면 귀찮아진다. 일일이 수습할 생각도 없는데, 어쩌면 좋을까. 물론 대부분은 ‘리더랑 비담 씨가? 하나도 안 어울리지 않아?’ 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조금이라도 의혹을 품은 사람들이 있는 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눈에 띄는 건 사양이고, 소문의 주인공이 되는 건 더 사양하고 싶으니까.
“비담 씨.”
“…응?
잠깐 머리를 식힐 겸 일에서 손을 놓고 있던 그녀에게 다가온 건 몇 번 정도 봐서 얼굴이 익숙한 조무래기 단원이었다.
“그, 죄송합니다. 쉬는 중이셨나요?”
“…쉬려고 했던 중이었고, 일할 때 건드는 것 보다 지금이 편하니 할 말이 있다면 지금 하시지요.”
차가운 표정, 차가운 목소리. 비담은 제가 그다지 정감 있는 언행을 가지지 않았다는 걸 알았기에 타인이 자신 앞에서 긴장하는 것을 이해했다. 지금은 못 본지 좀 되었지만, 나이차이가 꽤 나는 제 여동생마저도 자신 앞에선 얼어버릴 때가 있었는데 타인은 오죽하겠는가. 아무리 인생은 혼자 산다는 정신으로 타인과 커뮤니케이션을 거의 하지 않는 그녀지만, 이정도 이해력은 존재했다. 그녀는 똑똑했고, 제대로 자신의 감정도 가지고 있었으니까.
“리더 마적이 운석 건으로 의견을 묻고 싶다고 하셔서, 지금 당장 나오라고….”
“그래요? 어디로 가면 됩니까?”
“호걸 님과 함께 마그마슈트 개발실에 있습니다. 그럼, 전 이만.”
“아. 네. 전달 고마워요.”
말투는 정중하지만, 사실 고마워하는 느낌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이런 사무적인 표현에도 저 조무래기는 안심하겠지. 제가 봐온 바로는, 워낙에 소심했던 자였으니까.
어찌되었든, 불렀다면 가야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제 상사니까. 떨떠름한 표정으로 일어난 그녀는 일할 때만 잠깐 쓰는 안경을 벗어두고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걷어 올린 소매를 내리고, 일이 안 풀릴 때 마다 헝클인 머리를 정돈하면 준비는 끝이다. 최대한 단정한 꼴을 한 그녀는 피곤한 눈을 지그시 누르며 마적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아, 왔나요. 비담!”
마그마슈트 개발실에는 언제나 보던 연구원들과 호걸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건 놀랍지만, 그것보다 보여야 할 사람이 없는 게 신경 쓰인다. 주변을 한 번 빙 둘러본 비담은 목례를 하곤 호걸에게 물었다.
“리더 마적은 어디 있습니까?”
“음? 아. 리더는 잠깐 가지러 갈 게 있다며 나갔습니다. 곧 오실 테니, 미리 용건부터 말하죠. 괜찮습니까?”
“물론입니다. 운석에 대한 일이던가요.”
자신은 포켓몬 연구원이지 과학자가 아닌데, 이걸 왜 자신이랑 이야기하려고 하는 걸까. 비담은 뒤늦게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화를 끊지는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운석을 인공 주홍구슬로 만들어 그란돈을 깨우는 계획에 대한 이야기니, 그란돈을 연구하는 자신은 분명 할 말이 있을 테니까. ‘그래서, 굴뚝산에서 이걸.’ ‘방해하는 아쿠아단만 나타나지 않으면.’ 관심이 없다보니 호걸의 말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조금은 멍하게 대화를 듣고 있던 비담은 자신도 모르게 하품을 하려다가, 어깨를 잡는 손에 급히 입을 닫았다.
“이야기는 진전이 있나?”
익숙한 저음. 일부러 제 귓가에 속삭이는 게 명백한 목소리. ‘이런 때는 또 체면 없이 짓궂은 사람이라니까.’ 속으로 불평한 그녀는 눈동자만 굴려 자신을 불러낸 상대를 확인했다.
“아! 오셨습니까, 리더 마적! 물론입니다! 그렇지요 비담?”
“…아, 네. 물론.”
“그거 다행이군.”
그녀의 귓가에서 떨어진 그는 호걸과 비담의 가운데 쯤 멈춰 섰다. 나갔다 오면서 데려온 걸까. 마적의 뒤에는 구열이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그래. 생각해 보면 이 의논에서는 자신보다 구열이 더 할 말이 많을 텐데. 그녀는 자신과 달리 과학자였으니까, 운석에 대한 건 더 잘 알겠지.
“어쨌든, 지금 제일 중요한 건….”
핵심인물이 오자 회의는 빠르게도 흘러갔다. 연구원들의 다양한 의견제안과 호걸의 진행, 그리고 마적의 빠른 결정력으로 금방 결론이 나온 회의는 30분도 못되어 끝이 났다. 물론 그 30분 중, 비담이 말한 시간은 5분도 되지 않았다는 건 우스운 일이었지. 그녀는 괜히 시간을 빼앗긴 탓에 평소보다 표정이 안 좋아졌지만, 그걸 눈치 챈 건 마적 정도뿐이었다.
“다들 수고했다. 돌아가서 할 일들 하도록.”
“네! 리더 마적!”
특유의 경례자세로 파장(罷場)한 후에도, 비담은 곧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주 잠깐. 자신을 보지도 않는 마적을 노려본 그녀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혀를 찼다. 분명 못마땅한 상황이지만, 따로 소리 내어 불평하지 않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우선 눈에 띄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쓸데없는 소문에 불을 붙이고 싶지 않기도 해서였지.
아무 말도 없이 그를 흘겨보던 비담은 모두가 가버렸을 때 쯤 드디어 뒤돌아섰다. ‘수고하세요, 비담 씨.’ 슈트를 만드는 연구원 중 누군가가 인사했지만 비담은 목소리를 내기도 지치는지 고개만 숙여 대답하고 연구실을 나왔다.
“비담.”
아, 이번엔 또 뭔가.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던 그녀는 자신을 쫒아오는 발소리와 부름에 이를 꽉 깨물었다. 아무리 쉬는 중이었지만, 제게서 시간을 빼앗는다는 건 보통 의미가 아니었다. 워커 홀릭인 그녀는 일하는 시간 보다는 그나마 쉬는 시간을 빼앗기는 걸 선호했지만, 제대로 쉬지 않으면 일할 수 없는 걸 생각하면 쉴 때라도 이렇게 의미 없이 시간을 소모하게 만든 건 용서하기 힘들다.
다른 누가 이 꼴을 봐도 상관없다. 자신을 부르며 따라오는 마적을 무시하고 제 연구실까지 들어간 그녀는 재빨리 문을 닫아버리려고 했지만, 상대는 바보는 아니었다.
재빨리 문을 잡는 손. 문틈으로 비집고 들어온 발. 좁은 틈새로 보이는 눈빛은 오늘따라 더 의기양양해 보인다.
“…….”
“…….”
누구도 시선을 피하진 않는다. 물론, 손의 힘을 빼는 사람도 없었다. 한마디 말도 없이 문을 가지고 씨름하던 두 사람 중 결국 먼저 손을 놓은 건 비담이었다. 어차피 문을 닫아도 이 아지트의 가장 높은 사람인 그가 제 방에 들어올 방법은 수십 가지가 있었으니, 애써 힘을 뺄 필요가 있겠는가. 지독히도 논리적인 판단이었다.
비담이 물러서기 무섭게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은 마적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후우. 느리고 큰 호흡은 마치 한숨과도 같았다.
“…무슨 말을 해도, 이번에는 그냥 못 넘어갑니다. 아랫사람을 지위로 골탕 먹이니 재미가 쏠쏠하신가보군요. 리더 마적. 지고 못 사시는 성격인줄은 알았지만 제가 어제 한 말로 그리도 성이 났는지는 몰랐습니다.”
“말로 하려고 온 건 아니다만.”
“허.”
어이가 없다는 듯 짧은 감탄사를 내뱉은 비담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일까, 목구멍으로 스며드는 니코틴이 평소보다 더 달콤하게 느껴졌다. 이 맛에 담배를 못 끊는 거지. 그녀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전 지금부터 다시 업무를 시작할 겁니다만. 휴식시간은 이제 끝이거든요. 뭘 하고 싶으시던, 일단 저기 앉아서 얌전히 기다리시죠. 리더.”
아무리 제가 아랫사람이라도, 목적이 다른 이상 제가 그의 말을 순순히 따를 이유는 없지.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통보한 비담은 다시 책상에 앉아 지겨운 서류들을 뒤적거렸다. ‘흠.’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헛기침을 한 마적은, 얌전히 그녀가 지정해 준 의자에 앉아 턱이나 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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