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위한 주문 / 놀리테 티메레
※ 아오미네 다이키, 사쿠라이 료 양날개 드림. 오리주 주의.
※ 합작 홈 주소 http://happyspell.postype.com/
놀리테 티메레
written by Esoruen
“어이 료, 뭐냐 그건?”
“히익”
사쿠라이는 가방을 챙기다 말고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아오미네 때문에 어깨를 떨며 놀랐다. 같은 학년, 반 친구, 그리고 팀 메이트인 사이인데 뭘 그리 놀라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라커룸에 있는 농구부 부원들은 모두 사쿠라이의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능한 슈팅 가드인 사쿠라이는 토오학원 농구부에서는 보기 드문 ‘유약한’ 느낌을 주는 선수였고, 상대인 아오미네는 기적의 세대이자 성질 나쁜 걸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반항아였으니까. 어찌 보면 극과 극의 두 사람이니, 상대적 약자인 사쿠라이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
“그, 그건 이라니?”
“그거. 가방 구석에 처박혀 있는 거”
“아…”
아오미네가 가리킨 것은 곱게 개어진 손수건이었다. 겉보기에는 별 다른 특징이 없는 손수건은 어째서 상대가 흥미를 가질만한지 알 수 없을 만큼 평범했지만, 자세히 보면 그 손수건의 귀퉁이에는 자수로 새겨진 글씨가 있었다.
“이건 갑자기 왜요…?”
“아니. 못 보던 거라서. 네 거 맞냐?”
“어…”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는 건 분명 그렇지 않기 때문이겠지. 아오미네의 미간이 구겨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사실 그 손수건이 사쿠라이의 것이 아닌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아마 그걸 몰랐더라면, 굳이 말을 걸지도 않았겠지. 처음 보는 것도 아닌 눈에 익은 저 손수건은 분명히 호노카의 것이었다.
‘빌린 건가? 아니면?’
같은 반이기 때문에 그녀가 저 손수건을 사용하는 모습은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그러니 제가 잘못 봤을 리는 없다. 우연히 둘이서 같은 손수건을 샀을 가능성도 물론 있겠지만, 그게 얼마나 희박한 확률인지는 구할 필요도 없겠지. 아오미네는 여전히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사쿠라이를 대신해 손수건을 낚아챘다. 손수건에선 향수라도 뿌린 건지 좋은 냄새가 났다.
“아…!”
“잠깐 쓴다. 라커에 뭐가 묻어서”
“아, 안 돼요! 그건 제 게 아니라서…!”
“엉? 네 것도 아니면서 왜 네가 가지고 있는데?”
역시 호노카 거였군. 아오미네는 예상했다는 듯 비쭉 웃었다.
호노카 마유미는 자신과 사쿠라이와 같은 반인 여학생이었다. 180cm의 큰 키. 털털한 성격에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그녀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사교성이 좋은 학우였다. 물론 사교성이 좋으니, 자신과 사쿠라이와도 친하다. 아니, 사쿠라이랑은 각별하다 해도 좋을 만큼 친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오미네는 툭하면 호노카와 사쿠라이가 둘이서 붙어 다니는 걸 봤으니까 말이다.
“그게… 호노카 양이 빌려 준 건데 오늘 돌려주려다 시간이 안 맞아서…”
“그러고 보니 오늘 여자 농구부도 연습이던가? 그런 거였군”
“네, 그런 거니까 돌려줬으면 하는데…”
사쿠라이의 부탁은 간절했지만, 아오미네는 봐주는 법이 없었다. 사쿠라이가 뭐라 하든 거침없이 라커 안의 얼룩을 손수건으로 닦은 아오미네는 거의 절규 직전인 팀 메이트를 보고 어깨를 으쓱였다.
“왜 그래? 어차피 손수건은 이런 데 쓰라고 있는 거잖아?”
“하, 하지만…”
“아아, 걱정 마. 이건 내가 호노카에게 돌려줄 테니까. 그러면 문제 없지?”
‘아닌데…’ 뭐가 아니라는 진 알 수 없지만, 사쿠라이의 대답은 너무 작아서 아오미네는 그걸 손쉽게 무시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부려먹기 좋은 녀석이긴 하지만 답답하기 짝이 없다. 그는 사쿠라이의 안절부절못하는 얼굴을 오래 보고 있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그럼 난 간다. 내일도 도시락 싸와라 료”
대답을 듣지도 않고 밖으로 나간 아오미네는 슬쩍 손수건에 적인 문구를 읽어보았다. Nolite timere. 뭐라고 읽는 건지 감이 오지 않는 문구는 알파벳으로 적혀있었지만 영어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슬슬 여자 농구부도 귀가시간인가’
교문을 지나가던 아오미네는 농구부 져지를 입은 여학생들이 하교하는 걸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원래는 내일 교실에서 돌려줄 생각이었지만, 지금 마주친다면 바로 돌려줘도 될지도. 크게 기대하지는 않지만 일단 호노카가 오기를 기다리기로 한 아오미네는 제가 더럽힌 손수건을 빤히 보았다. 아까는 홧김에 라커를 닦긴 했지만, 얼룩이 안 지워지면 어쩌지. 그 답지 않은 걱정이었다.
“어라, 아오미네 군. 연습 하고 온 거야?”
역시 넌 양반은 못 되겠구나, 호노카 마유미. 등 뒤에서 들려온 호노카의 목소리에 아오미네가 고개만 슬쩍 뒤로 돌렸다. 팀 메이트와 다 같이 하교중인 걸까. 호노카의 양 옆에는 똑같은 져지를 입은 여학생들이 나란히 서있었다.
“마유 쨩, 우리 먼저 갈까?”
“응? 딱히 그럴 필욘 없는데”
“아냐, 아냐. 방해하면 안 되니까! 그렇지? 우리 먼저 갈게~?”
아직 별 말도 안했는데 무슨 생각을 한 걸까. 친구들은 호노카와 아오미네를 번갈아 보더니 훌쩍 자기들끼리 가버렸다. ‘그럴 필요 없는데…’ 머리를 긁적이며 멀어지는 친구들을 바라보던 호노카는 다시 한 번 아오미네에게 인사를 건네려다 그의 손에 있는 제 손수건을 발견하고 말을 바꾸었다.
“그거”
“어?”
“그 손수건. 내가 사쿠라이 군에게 빌려준 건데 왜 네가 가지고 있어?”
“아. 이거? 뭐 어쩌다 보니. 내가 좀 빌려서 썼어. 돌려주면 되는 거지?”
정확하겐 빌렸다고 말할 게 아니라 갈취했다고 하는 게 옳겠지만 굳이 그걸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오미네는 뭐가 문제냐는 듯 자연스럽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호노카는 그걸 받지 않고 주저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됐어, 사쿠라이 군에게 돌려줘”
“어? 네 거라며?”
“돌려받는다면 사쿠라이 군에게 돌려받아야 할 물건이야. 그건. 그냥 쓰라고 빌려준 게 아니거든”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아오미네는 좀 더 설명이 필요하다는 듯 눈썹만 까딱였고 호노카는 영리하게도 그 신호를 알아들었다.
“그 손수건에 쓰인 문구. 뭔지 알아?”
“몰라. 영어냐?”
“아니. 라틴어야. 놀리테 티메레.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지”
‘사쿠라이 군에게 딱 필요한 주문 아냐?’ 그렇게 말하는 호노카가 환하게 웃었다. 아. 늘 사쿠라이와 대화 할 때 마다 나오는 웃음이다. 어쩐지 기분이 나빠진 아오미네는 신경질 적으로 손수건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다 큰 남자보고 두려워하지 말라니. 뭐 료 녀석은 믿음직스럽지 못하긴 하지만”
“무슨 소리야. 두려움엔 남녀노소가 없어. 물론 너처럼 어느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자는 잘 모를 수도 있지만…”
말끝을 흐린 호노카는 시선을 이리 저리 굴리다가, 급히 제 말을 정정했다.
“아니다. 분명 너에게도 뭔가 너만의 두려움이 있겠지. 나는 이해 할 수 없겠지만”
“허? 내가?”
“그래. 뭐 승자의 고독이라거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오는 두려움? 나 같은 범인은 잘 모르겠지만 두려움이 없는 자는 이 세상에 없잖아?”
승자의 고독. 자신과의 싸움. 그 말에 아오미네는 문득 제 말버릇을 떠올렸다. 나를 이기는 것은 나뿐이야.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지만, 그다지 반갑지 않은 그 말은…
“…어쨌든, 그건 사쿠라이 군에게 줘. 그럼 난 갈게. 내일 보자?”
대답이 없는 아오미네를 남겨두고, 호노카는 제 친구들에게로 돌아갔다.
‘잠깐’ 그는 자신을 스쳐지나가는 호노카를 불렀지만, 그 목소리는 너무나도 작아서 그녀의 귀엔 닿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