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위한 주문 / 오블리비아테
※ 쿠죠 죠타로, 카쿄인 노리아키 양날개 드림. 오리주 주의.
※ 합작 홈 주소 http://happyspell.postype.com/
오블리비아테
written by Esoruen
잠들지 못하는 밤은 언제나 괴로웠다. 특히 그것이 제대로 된 호텔방이나 건물 안이 아닌, 바깥에서의 노숙일 경우엔 더더욱 그랬다. 차라리 피로에 지쳐 기절하듯 자버린다면 속 편해질 텐데. 반디는 싱숭생숭한 얼굴로 바닥에 피워놓은 모닥불 옆으로 다가갔다.
“잠이 안 오나요? 호타루 씨”
“으악!”
별 생각 없이 불가로 간 그녀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자는 줄 알았는데, 깨있었던 걸까. 어쩌면 잘 자고 있던 걸 제가 움직이다가 낸 소음으로 깨워버린 걸 수도 있겠지. 비뚤어진 안경을 고쳐 쓴 반디는 어색하게 웃으며 제 동료에게 인사했다.
“좋은 밤. 카쿄인 군”
“좋은 밤이네요. 호타루 씨”
호타루. 그가 지어준 애칭. 반디는 이젠 제 이름만큼 익숙해진 그 별명이 좋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더 편하게 부르기 위해 애칭을 지어준다는 건 행복한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그 애칭이 제 본명과 뜻은 같지만 발음하기는 더 쉽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뭐, 그래도 이 애칭을 부르는 건 일본인인 카쿄인이나 죠타로 뿐이었지만 말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놀라게 한 건가요?”
“응? 아냐, 확실히 놀라긴 했지만… 사과할 일은 아니니까”
“그런가요. 그런 것 치곤 굉장히 놀란 얼굴이었지만요”
“…윽, 웃지 마”
‘네, 네’ 웃음을 삼키며 그녀의 옆에 앉은 카쿄인은 들고 있는 담요를 그녀의 어깨에 둘러주었다. 참으로 다정한 성격이다. 어쩌다 이런 착한 남자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여정에 참가해야 했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로.
“졸리진 않나요?”
“그다지… 잠이 안 오네. 긴장한 건가?”
“확실히, 점점 이집트에 가까워지고 있으니까요. DIO와 만날 날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고…”
DIO. 이 여행을 시작하게 만든 장본인이자 자신들에게 육아를 심었던 원수. 죠타로가 아니었다면 평생 그의 수하로 살았을 반디와 카쿄인은 DIO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많은 대화가 오가지 않아도 서로가 느낄 불안을 이해할 수 있었고, 공감할 수도 있었다. 그건 둘에게 있어 좋은 점이기도 했고, 나쁜 점이기도 했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어쩌면 이집트에 도착하고 나서가 제일 힘들겠네”
“뭐, 상대가 상대니까요”
“이길 수 있으려나… 비관적인 건 좋지 않지만, DIO의 수하도 아직 많이 있을 거고…”
타닥타닥. 마른 나무가 타는 소리가 두 사람의 말소리를 잡아먹었다. 어느새 말이 없어진 두 사람은 달보다 밝은 모닥불만 바라보고 있었다. 불이 일렁일 때 마다, 과묵한 그림자 두 개만이 요란하게 춤을 췄다.
“한 밤중에 청승인가?”
“아”
또 한 명 더 깨버렸군. 반디는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보고 웃었다.
“좋은 밤, 죠죠”
“죠타로, 너도 잠이 안 오는 거야?”
“너희들 목소리 때문에 깬 거다. 정말이지, 안 자고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자다가 깨었다는 말은 정말인지 그의 눈에는 피곤함과 짜증이 가득했다. 아무리 강력한 스탠드를 가진 거구의 남자라 해도 역시 수면 부족은 치명적이겠지. 괜히 미안해진 반디는 비어있는 제 옆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쪽에 와서 불이라도 쬐어. 금방 졸려질 거야. 담요도 줄까?”
“내가 애냐. 신경 쓸 필요 없어”
“애 취급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지 카쿄인 군?”
“그럼요”
아주 쿵짝이 잘 맞는군. 죠타로는 기가 찬다는 눈으로 카쿄인과 반디를 보다가 결국 그녀의 옆에 앉았다. ‘결국 올 거면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중얼거린 그녀는 제가 덮고 있는 담요를 내밀었지만, 커다란 손은 그 호의를 거절했다.
“난 됐으니 너나 덮어”
“정말?”
“그래. 난 춥지 않으니까. 애초에 본인보다 덩치가 훨씬 큰 남자를 챙기는 건 너 뿐일 거다”
하긴 따지고 보면 웃긴 풍경이긴 하다. 키뿐만이 아니라 체격도 좋은 고등학교 남학생 둘 사이에 덩그러니 놓인 여대생이라. 어색하다곤 할 수 없지만, 비주얼 적으로 보면 좀 묘할지도. 제 옆의 동료들을 번갈아 본 반디는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뭐가 웃기지?”
“아니, 아니. 확실히 DIO가 아니었으면 내가 이런 경험을 해보긴 했을까 싶어서”
“이런 경험? 노숙 말인가?”
“그게 아니지 죠타로. 호타루 씨는 아마 이 여행 자체를 말하는 걸 거야”
카쿄인의 말이 맞았다. 반디는 제가 이렇게 전혀 다른 국적의 남자들과 여행하게 된 것 자체가 너무나도 신기했고 즐거웠다. 비록 이 여정에서 만난 여러 위협은 웃어넘길 레벨이 아니었다 해도, 만난 인연은 모두 소중하다. 죠셉도, 폴나레프도, 압둘도, 죠타로도, 카쿄인도… 누구 하나 빠짐없이 모두 다.
“생각해 보면 재밌는 일도 많았지”
“꼭 여행이 끝난 것처럼 말하는군”
“하하, 이상한가? 죠죠나 카쿄인 군은 즐겁지 않았어?”
“확실히, 죽을 뻔 했던 적도 많았지만 즐거웠던 적이 없었던 건 아니죠”
다들 좋았던 일만 떠올리려고 하는 걸까. 세 사람은 또 말이 없어졌다.
바람과 모닥불의 소리는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다. 머나먼 고향과 평화로운 일상. 그 그리움을 이겨내고 나면 다음으론 여정에서의 추억이 떠오른다. 적 스탠드 유저와 싸운 일, 다 같이 식당에서 메뉴를 고르느라 말다툼을 한 일, 노숙을 하며 벌레를 쫒아냈던 일까지. 추억에 잠긴 세 사람 중 가장 먼저 소리를 낸 것은 반디였다.
“죠죠, 카쿄인. 잠깐 이리 와봐”
“네?”
“이 이상 어떻게 다가가면 되는지 모르겠군”
“아, 말이 이상했나? 음… 아 그냥 가만히 있어봐!”
3개 국어나 할 줄 아는 그녀지만, 결국 모국어가 아니면 말문이 막힐 때가 있는 법이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두 남자를 번갈아 보던 그녀는 대뜸 두 사람에게 어깨동무를 해 서로의 간격을 좁혔다. 나란히 붙은 세 머리통이 정겹다. ‘호타루 씨?’ ‘뭐냐, 호타루’ 반디는 양 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작게 읊조렸다.
“오블리비아테”
“…오…뭐라고?”
죠타로의 되물음에 대한 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두 사람의 어깨를 놓아주고 허리를 똑바로 세운 그녀는 카쿄인이 준 담요를 곱게 개었다.
“오블리비아테(Obliviate), 좋은 기억만 남게 하는 주문이야”
‘지금 우리에게 제일 필요할 것 같아서’ 뒤늦게 답한 그녀는 담요를 카쿄인에게 돌려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계가 없어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지만, 머리 위에 떠있던 달이 제법 기울었다. 지금 잠들지 못하면 정말 내일 아침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난 잘게. 두 사람도 얼른 자”
“아, 주무세요”
“잘 자라”
어차피 두 사람은 그녀 때문에 일부러 깨어있던 것이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곧 자러갈 것이었다. 딱 사람 한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던 죠타로와 카쿄인은 반디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변할 때 까지 조용히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좋은 녀석이란 말이지”
“응. 여정이 끝나도 자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 일본과 한국은 그다지 멀지 않고”
“뭐, 무사히 여정이 마친다면 말이지”
“하하, 불길한 소리 하지 마. 죠타로”
‘아무도 죽지 않을 거야’ 카쿄인의 그 말에 죠타로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그래, 아무도 죽지 않으면 좋겠지. 하지만 어째서일까. 죠타로는 이 여정이 끝난 후 모두가 웃으며 돌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날 밤, 죠타로는 꿈을 꾸었다.
반디와 카쿄인이 자신을 두고 둘이서만 어디론가 가 버리는 꿈이었다.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은 눈부신 빛이 내리쬐고 있어 죠타로는 동료들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기 힘들었다. ‘잘 있어 죠타로’ ‘건강해야해, 죠죠’ 그런 인사를 남기고 앞으로 나아가는 두 사람은 아픔도 슬픔도 없이, 마치 좋은 기억만 가득한 것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상한 꿈이다. 꿈에서 깬 아침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는 머지않아 이게 그냥 꿈이 아닌 것을 알게 되겠지. 조금 가까운 미래. 이집트의 어느 도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