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Pokémon

드림 스팀펑크 합작 / 배웅

Esoruen 2017. 3. 23. 13:58


※ 서브웨이 마스터 드림. 오리주 주의.

※ 합작 홈 주소 → http://heshed10.dothome.co.kr/steampunk/index.html




배웅

written by Esoruen




마을에서 가장 붐비는 그 역은 이 나라의 자랑과도 같았다.

 

비행선과 복엽기가 날아다니는 하늘. 대부분의 이동을 하늘길로 할 수 있는 지금 시대에 증기기관차란 한물 간 이동수단 취급을 받기 일쑤였지. ‘하늘에 대한 로망이란 건가.’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열차의 매력을 몰라주는 것은 슬픈 일이다. 디젤은 오늘도 커다란 가방을 챙겨 기차역으로 향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비행선으론 2시간이나 걸리고 기차역으로 세 정거장이나 지나야 하는 목적지로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은 바쁘기 그지없다. 유능한 자동인형 제작가인 디젤은 매일매일 이 도시 저 도시를 오가느라 바쁜 유명인 이었지만, 일이 없을 때는 늘 고향인 이 마을에서 시간을 죽이곤 했다.

 

나는 여기가 정말로 좋아. 늘 기차소리가 들리잖아. 정말로 아름다운 마을이야!”

 

레일을 따라 달리는 소리도, 동력기관이 움직이는 소리도, 매연을 내뿜을 때 나는 소리도 그녀에겐 모두 정겨운 것이다. 오죽하면 작업실을 기차역에서 가까운 곳이 아닌 선로에 가까운 곳으로 잡았을까. 다행이도 그녀의 별난 취향은 자주 예술가의 특이취향 정도로 포장되어 크게 이상한 시선을 받지 않았지만, 디젤도 제 취향이 평범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처음엔 좋아하다가도 시도 때도 없이 기차소리에 신경쇠약에 걸리겠지. 그걸 생각하면 자신과 함께 지내는 것들이 자동인형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후우, 무거워.”

 

커다란 가방 안에는 막 완성된 인형이 들어있다. 집안일을 위해 만들어진 이 소형 자동인형은 이제 주인의 품으로 가서 온갖 사랑을 받으며 제 임무를 다할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이 무거움도, 밤샘의 피곤함도 다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법이지. 하지만 가장 그녀를 기운 나게 하는 건 아이러니 하게도 작업실이 아닌 이 철도역에 있었다.

커다란 시계탑을 지나 플랫폼으로 들어서면 새까만 몸체가 아름다운 열차와 승하차중인 수많은 승객들이 보인다. 사람들로 복잡한 역 내지만, 그 와중에도 유난히도 키가 커 눈에 확 띄는 역무원이 디젤의 눈에 들어왔다. ‘있다!’ 신이 나 활짝 웃은 그녀는 어마어마한 인파를 뚫고 역무원에게 다가갔다.

 

상행!”

 

역무원의 얼굴이 보일 정도로 다가간 디젤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상대를 불렀다. 승객들의 안내를 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들은 걸까. 역무원이 모자를 고쳐 쓰며 고개를 돌렸다. 무뚝뚝한 남자의 얼굴에, 살짝 웃음기가 돌다 사라졌다.

 

디젤.”

오늘도 바쁘네요! 하행은요?”

하행은 열차 안에 있습니다. 오늘도 외출입니까?”

 

그녀가 든 가방을 재빨리 받아준 그는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에 눈을 크게 떴다. 겉보기에는 연약해 보이는 마른 몸인데, 어디서 이런 걸 들 힘이 나오는 걸까. 어릴 때부터 그녀를 봐왔다지만 정말 저 힘의 원동력만큼은 알 수가 없었다. ‘좋아하니까 덜 무겁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요?’ 언젠가 그녀가 한 말을 떠올려 보며 가방을 고쳐든 상행은 그녀를 열차 안으로 안내했다.

 

오늘은 어디까지 가십니까? 작품을 전해주러 가는 것 같은데.”

꽤 멀리가요! 아마 내일이 되어서야 돌아오지 않을까 싶은데.”

이런, 그럼 그동안 이 도시도 조금 외로워지겠네요.”

 

객차로 자신을 안내하는 상행의 말에 디젤은 불에 달군 석탄마냥 얼굴이 달아오르고 말았다. 이 넓은 도시에 자신하나 없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별로 없고, 안 그래도 바쁜 상행은 제가 없다는 걸 신경 쓸 틈도 없을 텐데. 어쩜 이렇게 로맨틱하게 말하는 걸까.

 

, 상행도 참! 금방 돌아올 거니까 아니, 이게 아니라.”

 

허둥지둥 하는 그녀를 보던 그의 얼굴에 다시 한 번 미소가 번졌다. 솔직한 건 이래서 좋은 거겠지. 무슨 말을 해도 얼굴과 몸짓에 반응이 금방 오는 디젤을 보고 있다면 어떻게 그녀가 좋은 인형을 만들어 내는지 대강 짐작이 된다. 감정과 표정이 풍부하니까, 인형에도 희로애락이 깃드는 거겠지.

 

돌아오면 또 같이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겠습니까?”

정말요?”

. 디젤만 괜찮으시다면.”

갈래요! 약속이에요! 알겠죠?”

 

이런 약속을 거절할 리가 있나. 디젤은 신이 나서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상행은 언제나 바쁘지만 성실하니 이렇게 약속을 해놓으면 반드시 지킬 것이다. 그를 정말로 좋아하는 디젤은 그를 좋아하는 만큼 상대에 대한 걸 잘 알고 있었다.

가방을 내려놓은 그는 내밀어진 손에 제 손을 가져갔다. 새끼손가락을 거는 걸로 그녀가 안심할 수 있다면 이런 건 어렵지도 않지. 두 손이 가까워지고, 상행의 손가락이 그녀의 손가락에 걸리려는 순간.

 

나는?”

 

상행과 똑같은 얼굴이 그의 뒤에서 툭 튀어나왔다.

우왓 보통 이런 경우엔 귀신이라도 나온 줄 알고 식겁하겠지만 디젤은 작은 감탄사를 내뱉는 것 외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똑같아 보이지만 분위기는 조금 다른 얼굴. 상행의 쌍둥이 형제와도 친한 그녀는 기꺼이 다른 쪽 손가락도 내밀며 웃었다.

 

좋아요, 하행도 같이 가요!”

하행. 언제 오신 겁니까?”

방금! 출발 준비 다 하고 왔어!”

 

참으로 기가 막힌 타이밍에 왔다. 누가 생각해도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으리라. 물론 하행의 등장을 반기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로맨틱한 분위기가 깨진 건 아쉬웠지만, 그 이전에 디젤도 상행도 하행을 매우 좋아했으니까.

 

그럼 셋이서 먹으러 가는 거지? 나 두고 가면 안 돼!”

걱정 마세요! 상행이랑 제가 하행을 두고 갈 리가 없잖아요?”

 

양 손 가득 약속을 받은 디젤은 만족한 듯 웃었다. 원래도 남은 주문이 있으니 빨리 돌아올 작정이었지만, 이런 약속을 잡은 이상 총알같이 돌아와야겠지. 가방을 객실에 손수 넣은 그녀는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문 앞에 서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슬슬 출발시간이네요.”

그렇군요.”

내리기 싫다, 그치?”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데도, 이별의 시간이란 늘 아쉽기 그지없다. 예를 갖춰 동시에 그녀에게 인사한 두 사람은 마치 자동인형처럼 정확하게 움직였다.

 

좋은 여행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손님.”

 

마치 한 명이 움직이는 것처럼 정확히 겹치는 발소리가 멀어지고, 열차에서 각종 소음이 울려 퍼진다. 창문 밖에 몇몇 사람들이 열차를 향해 손을 흔드는 걸 보며 디젤은 제 몸의 반 정도 되는 가방을 끌어안았다.

저기 배웅하는 사람들 중에선 없지만, 상행과 하행도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있을까.

그런 상상을 하면 괜히 기뻐서 웃음이 나온다. 실없이 소리죽여 웃은 그녀는 힘차게 울리는 고동소리에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