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장기합작 1분기 / 봄의 이야기
※ 제너럴 연애, 블래스터 우정 드림. 오리주 주의.
※ 합작 홈 주소 → https://moonmist.wixsite.com/a-year-together
봄의 이야기
written by Esoruen
“블래스터, 너 분명 황도군 맞지?”
“새삼스럽게 무슨 소리야?”
“…아니, 같은 황도군인데 왜 이렇게 비는 시간의 차이가 큰가 싶어서?”
“…….”
이건 혹시 무법지대에서 유행하는 신종 험담방법이 아닐까. 그게 아니고 나서야 이렇게 까지 말에 가시가 있을 필요는 없을 텐데. 훈련이 끝난 후 쉬고 있던 블래스터는 제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거는 루엔에게 무슨 대답을 해줘야 할지 알 수 없어 머리를 긁적였다.
“제너럴은 윗사람이니 할 일이 많고, 나는 기본적으로 전시(戰時)외엔 한가하지. 어차피 싸울 땐 서로 만만찮게 바쁘지만. 알면서 왜 그래? 제너럴이 또 바쁘니 나중에 보자고 했어?”
“응.”
“역시 그거냐고!”
‘내 이럴 줄 알았지.’ 불평을 덧붙이는 블래스터의 목소리에 주변의 몇몇 병사가 웃음을 터뜨렸다. 선임이 까이는데 팔자 좋게 웃다니, 간도 크다. 다른 부대의 병사들은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블래스터의 부대는 조금 달랐다. 그의 부대는 선임이고 후임이고 할 것 없이 사이가 좋았고, 무엇보다 가장 선임인 블래스터는 딱딱하고 위협적인 분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상하관계만 지켜준다면, 조금은 풀어져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좋은 법이지. 그렇게 생각하는 블래스터는 주변의 웃음소리엔 태클을 걸지 않았지만, 루엔과는 계속해서 만담 같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데스페라도는 어디 갔어?”
“사정이 있어서 무법지대에 들렀다 온다고 하더니 아침에 나갔어. 내일 아침에 올 거야.”
“넌 왜 안 따라 갔어? 그 녀석이 널 두고 왔다 갔다 하다니 별일이네.”
“난 젤딘 씨 일을 도와준다고 남았지.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나서 이렇게 한가해졌지만.”
젤딘이 굳이 루엔에게 부탁할만한 일이라면, 카르텔 잔당 소탕 중 잡은 포로에 관한 것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블래스터는 갑자기 얼굴이 굳더니 조금 뒤 아무렇지 않은 척 어색하게 웃었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한 건진 예상이 가지만, 절대 자세히 알고 싶진 않다. 루엔이라면 아마 원하는 답을 듣기 위해 ‘무법지대의 방식’을 써서 포로를 압박했을 테고, 상대는 죽기 싫어서라도 카르텔에 대한 정보를 불었을 텐데. 그 살벌한 광경을, 굳이 자세히 알 필요가 있을까.
“수고했어. 힘들었겠네.”
“힘들 것까지야. 뭐, 카르텔을 상대하는 일이니 피곤하긴 했지만.”
“그래서 기분 전환 겸 제너럴에게 갔는데, 제너럴은 아직 일이 안 끝났던 거고?”
“정답이야!”
그래서 굳이 심술을 부린 거군. 상황파악이 끝나자 허탈한 웃음이 터져나온 블래스터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가볍게 스트레칭 했다.
“나라도 시간 내줄까? 점심 먹었어?”
“안 먹었는데. 이왕 시간 내줄 거면,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일은 아니지? 일만 아니면 도와줄게.”
방금 훈련을 마친 참인데, 또 일을 해야 한다면 아무리 루엔의 부탁이라도 탈주할 것이다. 그런 걱정을 한 블래스터였지만, 다행스럽게도 무법지대의 악몽이라 불리는 그녀는 그렇게까지 인정머리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질색이라는 그의 얼굴을 본 루엔은 소리 내어 웃더니 절대 그런 건 아니라는 듯 가볍게 손을 저었다.
“아냐, 아냐. 일이랑은 전혀 관계없는 내 개인적인 용무야!”
“그럼 도와주지 뭐. 난 여자에겐 친절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난 네가 좋아. 자 가자!”
아니, 그런 이유로 좋아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남겨진 병사들은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었지만, 블래스터는 별상관이 없는지 그저 콧노래를 부르며 루엔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몇 시간째 계속 되던 펜 움직이는 소리는 어디선가 들려온 배꼽시계 알람에 겨우 멈추었다. 후우. 짧은 한숨을 쉰 제너럴은 서류에 사인을 할 뿐인 반복 작업을 잠시 중단하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오늘만 바짝 일하면 내일은 여유롭게 지낼 수 있다. 그렇게 세뇌를 하며 일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일단 뭐라도 먹고, 일은 잠깐 쉬었다 마저 하는 게 현명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고개를 돌린 순간,
“여어.”
“…?”
제너럴은 창 밖에서 어슬렁거리던 블래스터와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블래스터?”
“잠깐 쉬는 중이야? 그것보다, 창문 좀 열어주지 그래?”
“…무슨 일이십니까?”
찾아올 거라면 문으로 찾아왔어도 될 텐데, 창문 밖에서 뭘 하던 걸까. 어쩐지 수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블래스터가 제게 해를 끼칠 리 없다 생각한 제너럴은 쉽게 창문을 열어주고 말았다.
“아니 별건 아니고, 점심은?”
“아직 입니다. 간단히 먹고 다시 일할 예정입니다만.”
“그으래?”
이런. 어쩐지 불길해 보이는 미소다. 제너럴은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위험에 창문을 도로 닫을까 고민했지만, 그 고민이 끝나기도 전 블래스터는 이미 행동을 개시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뻗은 손이 제너럴의 허리를 감싸고, 열린 창문 밖으로 그 몸을 끌어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밖으로 끌려나온 제너럴은 이게 무슨 일이냐고 블래스터에게 따질 틈도 없이 입이 틀어 막히고 말았다.
“미안! 따질 거라면 루엔에게 따져 줘!”
“으읍?!”
갑자기 루엔은 왜 들먹이는가. 정말 알 수 없는 일투성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얌전히 블래스터에게 보쌈 되는 것뿐이었다. 힘으로 벗어나고 싶어도 블래스터는 매일 중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몸이라 완력차이가 너무 났고, 자신은 밥도 못 먹어서 힘이 안 나왔으니까.
‘겨우 얌전해졌네.’ 어깨에 들쳐 멘 제너럴이 조용해진 걸 확인한 블래스터는 신속히 그를 데리고 막사 밖으로 향했다. 가로수로 심은 벚나무에선 꽃잎들이 춤추며 떨어지고, 니베르의 주장으로 심응 꽃밭에는 나비들이 날아드는 여유로운 황도의 거리. 그 거리를 거의 끝까지 달린 블래스터가 도착한 곳은 아직 복구가 다 이루어지지 않아 벚나무 외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터였다.
“앗, 왔다!”
“그래, 데려왔어! 하여간 이런 일을 시키다니. 루엔 너도 참 대범하다니까.”
“…엔?”
땅만 보고 있던 제너럴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고, 블래스터도 이만하면 됐다는 듯 어깨 위의 그를 땅 위에 내려주었다.
‘쨔쟌!’ 익살스럽게 양 팔을 벌리며 자신을 환영하는 루엔이 앉은 돗자리 위엔, 누가 봐도 혼자 먹기엔 많은 양의 도시락이 한가득 늘어져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제가 블래스터에게 부탁했어요! 제너럴을 일에서 구출시켜 달라고요!”
“뭐, 말을 저렇게 해서 그렇지 납치지만 말이야.”
‘시끄러워, 블래스터.’ 그의 돌직구를 가벼운 등짝 스매싱으로 응징한 루엔은 얼른 앉으라는 듯 돗자리의 빈 곳을 손으로 툭툭 쳤다.
“어차피 이렇게 안하면 제너럴은 쉬지도 않잖아요? 돌아가선 그냥 다 제 탓이라고 하고, 지금은 밥이라도 먹으며 푹 쉬세요!”
“…고마워요, 엔.”
“뭘요! 아, 방식이 조금 거칠었던 건 미안해요. 하지만 이렇게 안 하면 정말로 제너럴을 못 빼낼 거 같았고.”
그녀의 심정은 이해한다. 스스로 말하긴 조금 부끄럽지만 자신은 일 앞에선 고지식해서 업무를 남겨두고 자리를 뜰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설마 창문을 통해서 납치할 줄이야. 그것도 그녀가 직접 나서는 게 아니라, 블래스터까지 동원해서 말이다.
“블래스터도 수고했어. 자, 많이 먹으라고~!”
“고마워. 어쩐지 두 사람 데이트에 끼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아뇨, 전혀 신경 쓰지 않으니 앉으세요, 블래스터.”
블래스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로 괜찮다는 말을 한 제너럴의 표정은 단호했다. 그에게 있어선 루엔과 단 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했지만, 쓸데없는 오해를 사지 않게 행동하는 것도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제 집무실이면 몰라도, 이렇게 다른 사람들도 빈번히 지나가는 외부에서 단 둘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곤란하다. 주변에서 뭐라고 하는 것 까진 참을 수 있지만, 데스페라도의 귀에까지 들어가면 일이 심각해질 게 뻔하지 않는가.
“그럼 사양 말고…. 근데 루엔, 이 도시락 들은 다 어디서?”
“이 근처에서 사온 거야. 나 혼자서 이걸 다 만들려면 반나절은 써야 할 걸.”
“역시 그런 거였나. 뭐, 난 맛만 있으면 그만이지만. 잘 먹을게? 제너럴, 너도 얼른 앉아!”
“네. 알았어요.”
희미하게 웃으며 답한 제너럴은 제 어깨 위로 떨어진 꽃잎을 가볍게 털었다.
너무 바빠서 봄이 이렇게 깊어진지도 몰랐는데, 오늘은 그녀 덕분에 벚꽃도 보고 휴식도 취하게 되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일이야 돌아가서 죽어라 하면 그만이다. 제겐 일보다 소중한 것이, 지금 제 눈앞에 있었으니까.
자신을 데리고 나오자 말을 꺼내준 루엔과 그걸 도와준 블래스터에게 마음속으로 깊게 감사한 제너럴은, 두 사람 사이에 앉아 기쁘게 젓가락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