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커플 2세합작 시즌 2 / 아침식사 해프닝
※ 데스페라도 드림, 오리주 주의
※ 합작 홈 주소 → http://moonmist.wix.com/dreamjunior2
아침식사 해프닝
written by Esoruen
“엄마, 나 프러포즈 받았어!”
어느 날 아침, 아침식사를 위해 식탁에 앉던 12살짜리 딸이 저런 소리를 하면 그걸 들은 어머니는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까. 루엔은 아직 따끈따끈한 스프를 내오다 말고 망부석처럼 굳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프러포즈라면 분명, 청혼 받았다는 말이 아닌가. 겨우 12살이 청혼을 받아? 누구에게?
“무슨 소리야? 프러포즈?”
“응! 어른이 되면 결혼하자고 말이지!”
아, 그런 이야기인가. 험악하게 굳어가던 표정을 푼 루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딸과 아들 몫의 스프를 내려놓았다. 자신은 혹시 웬 변태 같은 취향의 성인남자가 치근덕거리기라도 한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그냥 동년배 아이들끼리의 애정행각이었나.
“그래, 누가 그런 소릴 했어? 아이린”
“찰스!”
“찰스? …아아, 주점의 외동아들인가?”
분명 몇 번인가 마주친 적이 있지. 그녀는 갈색 곱슬머리의 개구쟁이 소년을 떠올리며 웃었다. 설마 제 딸을 좋아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니, 제 딸 정도면 좋아하지 않을 남자가 없긴 하지만, 겨우 12살짜리 주제에 프러포즈라니. 꽤나 대담하지 않은가. 다른 지역이라면 어떨지 몰라도, 무법지대에는 저 정도 대범함도 없으면 믿음이 가지 않았다. 루엔은 소년의 당돌함이 마음에 드는지 소리죽여 웃었다.
미래의 사윗감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딱히 결사반대 할 이유도 없다. 흥미가 생긴 루엔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데스페라도 몫의 스프도 가져다 놓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라이엇, 너도 알고 있었어? 너희 누나 이렇게 인기 많은 거”
“…누나야 친구 많으니까. 응”
스프를 깨작거리던 라이엇은 아직 졸음이 덜 깬 눈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놀라지 않는 걸 보아하니, 아들은 아마 제 누나의 고백소식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늘 붙어 다니는 남매니 모르는 게 더 이상한가. 하지만 알고 있었다면, 이 어머니에게도 미리 말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괜히 서운해진 루엔은 장난스럽게 해선 안 될 말을 툭 던지고 말았다.
“아아, 우리 아이린도 이제 시집 갈 나이인가? 엄마 아빠는 서운해서 어쩌나?”
단언컨대, 무법지대 그 어디에도 12살 딸을 진지하게 시집보내려는 부모는 없으리라. 누가 들어도 농담인 말인데, 설마 거기에 진지하게 반응할 사람이 있을 그 누가 알았겠는가.
“뭐?”
“어라”
언제 돌아온 걸까. 루엔은 현관에 서있는 제 남편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늦었네?’ 분명 그렇게 인사를 했는데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던 걸까. 평소엔 습관적으로 담배를 끄고 들어오던 그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럴 여유도 없는지 성큼성큼 식탁 앞에 와, 제 딸에게 물었다.
“아이린, 너희 엄마가 뭐라는 거냐?”
“오셨어요, 아빠? 아, 맞아! 나 프러포즈 받았어요!”
“……”
오, 이런. 옆에서 얌전히 밥을 먹고 있던 라이엇은 제 아버지의 표정을 보고 등골이 오싹해지고 말았다.
과거, 무법지대를 휩쓸던 카르텔을 총 두 자루로 박살내었던 제 아버지는 기본적으로 자식들과 아내에겐 한없이 다정한 사람이었다. 화도 잘 내지 않고, 정말로 화를 내도 소리는 지르지 않는. 이런 사람이 어떻게 과거 ‘사신’ 이라고 까지 불린 걸까. 라이엇은 늘 그렇게 생각해왔지만, 지금 그 생각은 완벽하게 박살나고 말았다.
‘큰일났다’
제 아버지가 저런 표정을 짓는 건, 태어나고 9년 만에 처음이다. 마을 양아치를 상대할 때도 이렇게 무서운 표정은 아니었는데. 절대 그럴 리가 없지만, 제가 살해당하는 건 아닐까 괜히 무서워진 라이엇은 덜덜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 수저를 놓아야 했었다.
“뭐?”
“그러니까…”
이제야 뭔가 분위기 파악을 한 걸까. 데스페라도의 얼굴을 본 아이린은 급히 입을 다물고 제 아버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제가 뭔가 말실수라도 했나? 라이엇과 달리 겁이 없는 그녀는 데스페라도의 살기에도 굴하지 않았지만, 루엔은 차마 못 봐주겠다는 듯 제 남편의 뒷목을 잡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애들 앞에서 뭐 하는 거야?!”
혹시 자식들이 들을까봐 문도 꼭 닫은 그녀는 강제로 그가 입에 물고 있는 담배를 빼앗아 버렸다. 식탁 앞에서는 피우지 말라고 했지? 그렇게 잔소리를 이어 갈 생각이었는데.
“아이린이 뭐라고 말하는 거냐? 그리고 뭐? 시집?”
아무래도 데스페라도도 그냥 발끈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담배를 빼앗긴 것도 상관하지 않고 루엔을 잡아먹을 기세로 노려보던 그는 초조하게 손을 쥐었다 펴며 리볼버를 찾고 있었다. ‘이건 뭐 딸바보가 아니라 딸등신인가?’ 루엔은 그가 이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제 기준에서는 이렇게 까지 정색할 필요가 있는 일인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누구도 믿어선 안 되는 무법지대. 비록 카르텔이 잠잠해지고, 자신들이 사는 마을은 평화로운 편이라 해도 이곳은 법이 없는 세상이었다. 자식이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 부모라면 당연히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귀한 딸이 누군지도 모를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는 말이 나왔으니 열이 받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딸은 겨우 12살. 이게 농담이라는 건, 그도 알고 있을 텐데.
“진정하고, 일단 내 말 들어. 총 챙기려고 하지 말고!”
“…알았으니 이야기 해봐”
“…어휴…”
겨우 그를 진정시킨 루엔은 자초지총을 이야기 하고 자신의 농담을 사과했다. 설마 그 농담을 진짜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고, 그게 제 남편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그녀였기에 그 사과는 사실 영혼 없는 사과에 가깝긴 했지만, 데스페라도는 제 아내의 사과가 가지는 진정성 같은 것에는 이미 관심이 없었다.
“찰스인가 뭔가는 어디 있어?”
“…그건 왜?”
“어떤 놈인지 봐야 할 거 아냐”
“아니, 진짜 결혼 하는 거 아니거든?! 왜 갑자기 상견례 앞둔 부모 얼굴이 되는 거야 너?!”
사람이 너무 황당하면 주변 상황도 잊어버린다 했던가. 아까 전까진 그래도 자식들이 듣지 않게 좋게 타이르려던 그녀는 결국 데스페라도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맹렬하게 반박하기 시작했다.
“내 딸은 나보다 약한 놈에게 못 줘”
“딸은 평생 노처녀로 늙어 죽게 할 셈이냐!!”
“이 무법지대에서 제대로 된 사내새끼가 어디 있어?”
“아니, 저기 방금 그거 자폭 아냐?! 그럼 나도 제대로 돼먹지 않은 남자랑 결혼한 거!?”
“나는 다르지”
안 되겠어. 이 녀석 지금 내 말을 들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드디어 사태파악을 한 루엔은 그의 두 볼을, 마치 자식에게 잔소리 하듯 쭉쭉 잡아당겼다.
“정신 차려요 아저씨~!! 댁네 딸 아직 12살이고 그 집 아들도 12살이거든?!”
“12살이면 다 컸지 왜 난리야!”
“난리인 건 내가 아니라 너라고!”
똑똑. 두 사람의 거칠어지는 대화를 말린 건 소심한 노크소리였다. ‘누구야?’ 루엔은 신경질 적으로 외치려고 했지만 곧 여기가 어디인지를 자각하고 입을 다물었다. 이 집에서, 자신과 데스페라도를 빼면 누가 남는가.
“왜 그러니? 들어와”
아무리 무법지대의 악몽이라 불렸고, 지금도 심심치 않게 그 별명으로 칭해지는 그녀지만 이제는 어머니로서 산 생활이 너무 길어져버린 걸까. 아까 전까지 데스페라도를 잡아먹을 듯 소리치던 루엔은 순식간에 자상한 어머니의 얼굴로 돌아와 문 밖의 자식들에게 말했다.
“…엄마, 아빠… 싸워요?”
울먹이는 목소리로 문을 연 것은 아들 쪽이었다. 아이린은 부모님이 싸우든 말든 신경도 안 쓰고 식사중인 걸까. 어찌 보면 과하게 무관심해 보일지 몰랐지만, 루엔의 입장에서는 딸 쪽의 대처가 더 고마웠다.
라이엇은 누굴 닮았는지 제 누나와는 달리 배려 깊고 다정한 소년이었다. 상냥함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빛이 되는 고마운 존재였지만, 이 험한 무법지대에 살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감정이었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때로는 잔인해지고, 냉혹해지고, 비정해져야 할 텐데. 그래도 아직 라이엇은 9살 밖에 되지 않았으니, 괜한 걱정을 하는 걸지도 몰랐지만 말이다. 사람이란 나이를 먹으며 성격도 바뀌기 마련이었으니, 지금부터 걱정 할 이유는 없겠지.
“아냐, 안 싸워. 놀랐니?”
“…싸우지 마세요”
아직 어린아이라 놀란 걸까. 고개를 푹 숙이고 웅얼거리며 말하는 라이엇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자신들이 좀 과했나. 그제야 겨우 머리가 식은 두 사람은 시선을 교환하고 한숨을 쉬었다.
“안 싸워. 안 싸우니까 걱정 마렴”
“정말이죠…?”
“그럼. 그렇지 데스페라도?”
“그래. 애초에, 우리가 진짜로 싸운 적이 있었나?”
데스페라도는 아들의 불안을 달래주고 싶은지 가볍게 라이엇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으음’ 고민하며 앓는 소리가 퍽 사랑스럽다. 아버지의 표정을 확인한 라이엇은 그제야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방을 나갔다. ‘휴우’ 문이 닫히기 무섭게 한숨을 쉰 두 사람은 그제야 겨우 이 바보 같은 싸움을 그만 둘 수 있었다.
“…일단은 넘어간다. 허튼 짓 하면 죽여 버릴 거라고 전해놔”
“네, 네. 아저씨 진정하고 나가서 밥이나 드시죠?”
“뭐 해놨는데? …뭐, 어차피 애들 좋아하는 거 했겠지만”
아까전과는 확실히 다른 부드러운 목소리. 평범한 부부의 대화가 오가는 방 앞, 아직 자리를 뜨지 않은 라이엇은 집안에 평화가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겨우 식탁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이 싸우는 동안 태평하게 식사를 마친 아이린은 돌아온 동생을 보곤 킥킥 웃더니, 슬쩍 윙크를 했다.
“어때? 네가 가니 바로 화해하시지?”
“…그건 그렇지만, 꼭 내가 말려야 했었어…?”
“당연하지, 우리 라이는 집안의 귀염둥이니까~! 나라도 라이가 울면 화가 싹 날아가 버릴 걸?”
“…하아”
비록 방식은 찝찝하지만, 어찌되었든 자신도 부모님이 싸우는 것은 싫다. ‘화목한 가정’ 이라던가 ‘집안 분위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천하의 데스페라도와 에소루엔 로시스라면 단순한 부부싸움도 총격전이 되어버릴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아까 제 아버지의 눈은, 정말 찰스를 찾아가 헤드 샷이라도 날려줄 눈이었다.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했다.
뭐, 결과적으로 평화로워졌다면 그걸로 된 거겠지. 원치 않게 이 말다툼의 원인이 된 아이린을 힐끔 쳐다본 라이엇은 제 몫의 빵을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