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黒子のバスケ

드림 여름합작 / 여름방학 소나타

Esoruen 2016. 10. 22. 01:57



하야마 코타로 드림, 오리주 주의

※ 합작 홈 주소 → http://hscme2.wixsite.com/summerdream

 

 


방학 소나타

written by Esoruen

 


 

그토록 기다리던 고교생활 첫 여름방학의 시작을 알려준 것은 그칠 것 같지 않은 소나기였다. 오늘은 비 온다는 일기예보도 없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방학식이 끝나자마자 비가 내릴 수 있는 걸까. 굵은 빗줄기가 후두둑 떨어지는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 차있었다.

미하네는 제 가방을 우산삼아 뛰어가는 학우들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 교실로 올라가지도 밖으로 나서지도 않고 그대로 신발장 앞에 멈춰서있었다. 망설이는 걸까. 그게 아니면, 갑작스러운 비에 당황하는 학우들을 관찰하는 걸까.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의 행동을 정하고 움직이고 난 뒤에도 여전히 맨발로 서있던 그녀는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어서야 들고 있던 단화를 바닥에 놓았다.

 

‘역시 여름은 비가 자주 오네’

 

비록 예보에는 없던 갑작스러운 비지만, 그녀에게는 그다지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여름은 원래 이런 계절이고 언제 비가 올지 모르니까, 만약을 대비해 미하네는 늘 가방에 우산을 넣어 다녔다. 다만 제가 우산을 가지고 있다는 걸 들킨다면, 자신과 그다지 친하지도 않으면서 얼굴과 이름만 겨우 아는 클래스메이트들이 몰려와 우산 좀 같이 쓰자고 할 게 뻔했다. 그러니 아무것도 모르는 척 서있었을 뿐. 사실 그녀는 처음부터 망설이지 않았다.

 

“앗, 타네구치~!”

 

앗. 이런. 예상외의 변수다. 미하네는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려다가 멈칫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제 이름을 부른 이상, 자신을 안다는 뜻이겠지. 기껏 혼자 우산을 쓰고 가고 싶어 기다렸는데, 이래서야…

 

“아”

 

마음속으로 늘어놓으려던 불평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맑은 녹색 눈동자 앞에서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악의 없는 미소, 커다란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장난꾸러기 어린아이 같은 몸짓.

 

“하야마 군”

“아직 안 갔어? 뭐해? 우산 없어?”

“…아니,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라면 거짓말을 했겠지만, 상대가 하야마라면 굳이 우산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진 않았다.

그는 사교성이 별로 좋지 않은 제가 반에서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는 세 명 안에는 드는 남학생이었고, 뭔가 나쁜 마음을 먹을 만큼 질 나쁜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에? 있는데 왜 안가고 여기서 이러고 있어?”

“그냥 사람이 많아서 조금 기다리다 보니… 하야마 군은?”

“난 교무실 다녀오느라! 감독 선생님이 불러서!”

“아하…”

 

그런 거라면 이해가 된다. 하야마는 아직 1학년이었지만 중학교 때 부터 주목 받아온 선수였으니, 인터하이를 앞두고 감독이나 주장에게 불려가 이런저런 말을 듣는 건 당연하겠지. 미하네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내려놓은 단화에 발을 넣었다.

새 학기가 막 시작했을 때 사서 지금까지 신어온 단화는 여기저기가 낡아 색이 바래있었다. 방학이 끝나면 신발부터 바꿔야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슬쩍 옆을 보자 제 신발보다 더 엉망인 남성용 단화가 눈에 들어왔다.

 

“있잖아, 나 역까지만 우산 씌워주면 안 돼?”

“…응, 좋아”

 

다른 사람이었어도 거절의 말은 못 하겠지만, 하야마라면 거절하고 싶지 않다. 키 차이가 좀 나서 우산을 같이 쓰긴 불편할 것 같지만, 이 또한 추억이라면 추억이 될 테니까.

 

“신난다!! 비 맞을까 걱정했는데!!”

“하야마 군이라면 빨리 뛰어가면 별로 비 안 맞을 거 같은데”

“엑, 나 그렇게 안 빨라! 육상 선수 아니고!”

“하지만 농구는 늘 뛰어다니잖아?”

 

운동신경도 없고 스포츠에도 관심 없는 그녀지만 농구에 대해서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체육 교과서를 읽고 얻은 지식도 있었고, 농구부가 연습하는 걸 본 적도 있었으니까. 10분씩 4쿼터. 쉬는 시간이 중간에 들어간다고 해도 그 정도를 뛰어다닐 수 있다는 건 100m를 뛰고 뻗어버리는 미하네에겐 다른 세계의 이야기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판타지 소설이라던가, 그런 곳의 이야기 말이다.

 

“그거랑 이건 좀 다르다고 할까… 학생화는 뛰기 힘들고!”

“아, 그건 확실히”

“그렇지? 그러니까 가자! 우산 줘, 내가 들래!”

 

제 앞으로 쑥 들이밀어지는 손에는 알 수 없는 열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기저기 굳은살이 박혀있는, 손가락 마디가 뚜렷한 남자의 손. 제 손이랑 비교하면 정말 터무니없을 정도로 커 보인다. 몇 번을 봐도 신기한 손 위에 접이식 우산을 올려주자, 하야마는 목줄 풀린 강아지마냥 쫄래쫄래 밖으로 달려가 우산을 폈다.

 

“가자, 타네구치~!”

“…음…”

 

역시 사람보다는 짐승 같다니까. 입으로는 차마 못 꺼내지만 미하네는 늘 하야마를 그렇게 생각해왔다. 이런 좁은 학교와 불편한 교복보다는, 저 멀리 가본 적도 없을 사바나나 정글 같은 야생이 더 어울리는. 달리고, 구르고, 제 마음대로 할 때 빛이 나는. 그런, 야생 동물 같은 소년이라고.

평소보다 훨씬 높은 우산 밑에 슥 들어가자, 뜨거운 손이 제 팔을 잡았다. ‘가까이 붙어야 안 젖어!’ 어차피 둘이서 쓰면 어깨나 옷자락이 젖을 수밖에 없는데도 필사적으로 자신을 끌어당기는 하야마의 품에선 땀 냄새와 체육창고에서 날 법한 묘한 냄새가 났다.

교무실만 들린 게 아니라, 체육관도 갔다 온 걸까? 혼자서 자신과 만나기 전 하야마의 행보를 상상하던 그녀가 무슨 상상을 한 건지 피식 웃자, 그가 뭔가 감이 온 듯 물었다.

 

“잠깐, 왜 웃어?”

“응? 아니…”

“아니, 가 아니라~! 무슨 상상 한 거야?”

“별거 아니야”

“으으”

 

다른 쪽으로는 이상할 정도로 눈치가 없으면서, 제 생각을 한 건 어찌 그리 잘 알까. 역시 사람이 아니라 야생동물이다. 그것도, 발톱과 이가 길고 날카로운 동물.

‘내 생각이었어?’ ‘글쎄다’ ‘왜 말 돌려~!’ 별거 아닌 일 가지고 투덕거리며 역까지 도착한 두 사람은 서서히 그쳐가는 비에 안심했지만, 이미 교복의 끝은 축축하게 젖어버린 후였다.

 

“타네구치는 어느 쪽으로 가? 난 이쪽 열차 타면 되는데!”

“나도 그쪽이야”

“아, 그럼 같이 가자!!”

“그럴까”

 

이제까지 같이 왔으면서 이런 건 너무 새삼스럽지 않나? 그렇게 생각했지만 분명 처음 꺼낸 말은 ‘역까지 우산 씌워줘’였다. 이렇게 다시 묻는 것도, 어쩌면 그에게는 일종의 친절이고 배려였을지도 몰랐다.

우산을 접어 돌려주는 손에는 이제 더 이상 열기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비에 젖어 차가운 손. 우산을 돌려받으며 제 손가락에 스치는 그 손가락의 온도를 확실히 느낀 미하네가 표정을 찌푸렸다.

 

“하야마 군”

“응?”

“…뭐 마실래? 주스라던가”

 

자신도 많이 젖었지만, 하야마쪽이 더 많이 젖었다. 사과의 의미라고 하기엔 약소하지만, 뭐라도 마실 것을 사 주고 싶었다. 겨우 자판기 음료이긴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 보다는 좋겠지.

 

“나 포카리!”

“취향이 확고한 건 좋네”

“에 그런가? …아니, 그것보다, 또 웃었지?”

“응? 나 웃었어?”

 

뭐가 우습다고 웃은 걸까. 미하네는 제 입가를 더듬어 보고 나서야 제가 웃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 자주 웃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아니라면, 아예 감정표현이나 생각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자신이었으니까, 억지로라도 미소 짓는 일은 드물 수밖에. 오죽하면 선생님이나 출판사 관계자도 ‘원래 이런 애지’라며 넘기곤 했는데, 제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미소를 짓는 날이 오다니.

 

“아, 왔다!”

 

나란히 포카리와 포도주스를 들고 플랫폼에 서있자, 생각보다 텅 빈 열차가 승강장으로 들어온다. 이미 하교할 아이들은 다 하교한 뒤라서 자리가 이만큼 남은 건가. 두 사람은 누가 먼저 말을 꺼낸 것도 아닌데 수많은 자리를 두고 나란히 앉아 내릴 역까지 제 손에 든 음료만을 홀짝였다.

덜컹덜컹. 기분 좋게 흔들리는 열차. 조금씩 멎어가던 비는 이제 완전히 그쳐서 창가에는 눈부신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볕 아래는 졸음이 올 정도로 따뜻하다. ‘뭔가를 마시다가 조는 꼴은 웃길 텐데’ 라고 걱정한 미하네는 잠을 깨보려고 볼을 꼬집어볼까 했지만, 제 옆의 하야마가 이미 곯아떨어진 것을 보고 웃느라 저절로 잠이 깨고 말았다.

비의 냄새, 땀 냄새, 햇볕의 냄새, 이온음료의 인공적인 향과,

여름의, 냄새.

제 옆에 앉아있는 그의 몸에선, 이 계절에 어울리는 냄새가 잔뜩 풍기고 있었다.

 

“…하야마 군?”

“……”

“…정말 자는 구나…”

 

이제 여름방학이니 자주 보지 못할 것이다. 만약 원한다면 먼저 연락해 놀러가거나 농구부의 연습을 구경하러 갈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학기 중처럼 늘 볼 수는 없겠지. 쓸쓸한 일이다. 늘 보던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진다는 건, 이렇게나 허전하고 쓸쓸한 일이었다.

 

“잘 자, 하야마 군”

 

어느 역에서 내리는지는 아까 들어뒀으니, 그때 깨우면 되겠지.

잠든 하야마가 불편하지 않게 제 어깨를 내어준 미하네는 차창 밖의, 완전히 여름으로 뒤덮인 젖은 도시에 시선을 빼앗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