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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Dungeon & Fighter

지인제 드림합작 :: 인어 / 인어공주



※ 데스페라도 드림. 오리주 주의.

※ 합작 홈 주소 → http://moonmist.wixsite.com/under-the-sea

 

 

 

인어공주

written by Esoruen

 

 

 

잠자리에 들 시간이면 아이들은 언제나 루엔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르곤 했다. 엄마, 잠이 안 와요. 옛날이야기 해 주세요. 아직 태어나서 l0년도 살지 못한 제 사식들은 아직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라 루엔을 보채기에 바빴다. ‘그래, 그래.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 줄까다행히 귀찮아하는 기색도 없이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그녀는 언제나 즐거워 보였다. 어쩌면 잠자리에서 펼쳐지는 그 이야기들은아이들이 아닌 루엔을 위한 자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럼, 오늘은 인어공주 이야기를 해 줄까

 

사실 그녀가 아는 이야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는다 해도 그녀는 결국 무법지대 출신. 제대로 배움을 받을 수 있는 황도나 이튼 공업지대와 달리 무법지대는 기본적으로 지식을 배우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지식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책을 읽는 것도 무법지대에선 쉬운 일이 아니었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데 교양서적이나 문학을 읽는 건 그럴 여유가 있을 정도로 강하거나 생을 포기했거나 하는 두 경우밖에 없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그녀는 여유가 있을 만큼 강하다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금전적으로 부족함 없이 자란 그녀는 켜서도 틈만 나면 책을 읽었고, 덕분에 이렇게 제 자식들에게 옛날이야기나 동화 한 둘은 들려줄 수 있는 어머니가 되었다.

 

옛날 옛적, 바다 속에 있는 용궁에는

 

나란히 누워 손을 잡고 있는 딸과 아들그 옆에 앉아 느릿느릿 이야기를 시작하는 아내. 제게는 과분한 평화로운 풍경이다. 데스페라도는 거실에서 아이들의 방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어버렸다자신에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 어쩐지 우스웠다. ‘자신은 행복함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같은 소리를 할 생각은 없지만, 역시 이 평화가 익숙해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평생 밖을 헤매고, 죽이고, 살아남기 위해 움직이던 자신과 그녀니까. 느긋하고 평화로우면 안전하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불안함이 밀려온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애들을 데리고 마차도 없이 다시 떠돌이 생활을 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자신들이 방랑하던 건 카르텔 때문이었는데, 이젠 카르텔도 거의 사라졌으니까. 자신들과 황도군의 활약으로, 아주 뿌리를 뽑아버렸지. 그러니 돌아다닐 이유도 없다.

 

오래 되긴 했군

 

옛 생각을 하던 데스페라도는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그녀와 자신을 떠올렸다. 그땐 젊었고, 무모했고, 화려했지. 피에 젖은 청춘이었지만 돌아오지 않는 젊은 시절은 아름다운 법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의자에 기댄 그의 귓가에 계속 들려오는 루엔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인어공주는 생각했어요’ ‘왕자님과 만날 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고, 육지로 올라가고 싶다고언제나 듣는 목소리인데도이상하게 이야기를 읊을 때 그녀의 목소리는 수면제마냥 절대적인 포근함을 안겨준다.

아이마냥 천천히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던 그는 고개를 꾸벅이더니,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인어공주는 용기를 내었어요

귓가에서는 계속, 그녀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채였다.

그래서 마녀를 만나러 갔답니다

 

 

 

데스페라도뭘 멍하니 있어?’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은 젊은 시절의 그녀였다. 몇 년 전의 모습일까. 20살을 넘었을 때인가? 아니면 조금 더 지났을 때? 언제든 지금보다는 훨씬 어린 시절이다. 혹시나 싶어 제 얼굴을 더듬어 본 그는 이것이 꿈이라는 걸 확신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별로. 아무것도 아냐

으음, 그럼 됐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새까만 머리카락도 같이 춤춘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저런 모습도 못 보게 되었지. 데스페라도는 단정하게 하나로 묶어 올린 지금 아내의 머리스타일을 싫어하진 않았지만, 가끔씩 저렇게 몸짓 하나하나에 살랑거리던 긴 머리가 그리워지곤 했다. 머리를 풀고 묶고의 간단한 차이일 뿐인데, 왜 이렇게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까. 어쩌면 그것 또한 다시는 오지 않을 젊음이 주는 환상 같은 걸지도 몰랐다

 

얼른 돌아와서 쉬고 싶다~!’

 

카르텔을 처리하러 가던 길이었나. 그녀는 밥을 먹거나 숨을 쉬듯이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악행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시절 자신들은아무리 상대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악이랑 비교해도 아깝지 않은 집단이었다 해도 참으로 무자비했지. 그걸 후회하거나 끔찍하게 여기는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마냥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만약 예전과 같은 일이, 카르텔이 다시모여 무법지대를 삼키고 황도까지 지배하려고 하는 일이 일어나면,

자신과 그녀는, 이렇게 사냥을 즐기러 다닐 수 있을까.

아마 절대 아닐 것이다. 자신과 루엔은 많은 것을 새로 얻은 만큼 많은 것을 잃었고, 그 잃어버린 것에는 자유로움도 있었다. 이제 자신은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죽는 것이 조금은 망설여시는 입장이 되었다. 그리고 아마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겠지.

데스페라도얼른 와! 나 피곤해

 

그래도 보채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군. 이상한 곳에서 안심해버린 그는 자신을 향해 내밀어진 손에 다가갔다. 낡은 가죽장갑, 여기저기 흉이 진 새하얀 팔. 제 청춘이고, 사랑이고, 전부인 그녀. 꿈인 것을 알면서도, 그저 눈앞의 환상이 사랑스러워서, 그래서 그저 손만 겹쳐보려고 했던 그가 손가락과 손가락을 얽으려는 순간

“!”

 

선명했던 그녀의 모습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그렇게 왕자님을 죽이지 못한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었고사라지면서 왕자님과 공주님의 행복을 빌어주었답니다.

이야기를 끝마친 루엔은 이미 오래전에 잠들어버린 아이들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언제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도 못하고 잠드니, 같은 이야기를 또 해달라고 조르지. 똑같은 이야기만 하면 질릴 법도 하지만 루엔은 한 가지 이야기만 여러 번 들려주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매번 잠드는 타이밍이 다른 것을 보는 것도 귀여웠고, 들을 때 마다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는 것은 놀라웠으니까. 이 작은 아이들은 차근차근 성장하고 있다. 자신과 데스페라도가 변해버린 만큼, 이 아이들도 자라나며 변하는 거다. 그 과정을 볼 수 있으니, 어찌 질린다고 불평하겠는가. 불편하게 앉아있어 다리가 저리지만, 슬슬 안방으로 돌아가야 한다. 데스페라도라면 아마 잠들지도 않고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아이들 때문에 남편을 너무 기다리게 하는 건 미안했으니까.

어라, 데스페라도? 밖에서 기다렸어?”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그를 발견한 루엔은 처음엔 의외라는 듯 말을 걸었지만, 곧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약간의 식은땀. 얼굴을 감싼 손은 가늘게 떨고 있다. 어딘가 아픈 건 아닐까. 제 불안이 괜한 걱정이길 비는 그녀의 표정이, 초조함으로 일그러졌다.

데스페라도? 왜 그래? 어디 아파?”

루엔

그래 나야. 미안, 애들 재우는데

잠깐 이리 와봐

 

가라앉은 목소리 속에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픈 건 아니라면, 남은 가능성은 악몽 정도인가. 몸에 이상이 없는 것이 무엇보다 다행이지만, 마음이 아픈 것 또한 큰 문제지. 땅이 꺼져라 한숨 쉰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는 데스페라도에게 다가갔다.

 

왜 그러는 거야 정말

 

불평을 하려던 루엔의 입을 멈추게 한 것은 그 허리를 꽉 끌어안는 팔이었다.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닌데, 팔에 실리는 힘은 필사적이란 말밖에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억세다. 마치 어린애마냥 허리에 매달려, 품속에 머리를 비비는 데스페라도는 한참 말도 없이 그렇게 아내의 체온을 느꼈다.

 

데스페라도?”

가지 마

?”

날 두고 바다로 돌아가지 마

 

무슨 소릴 하는 걸까, 이 남자는. 루엔은 두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갑자기 바다 이야기가 나온 건 둘째쳐도, 돌아가? 제가? 데스페라도를 두고맥락 없는 말에 생각을 정리하던 루엔은 가볍게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내가 인어공주라도 되나. 바다로 가게

……

내가 돌아갈 곳은 네 품 속 뿐이야. 데스페라도

 

죽어도, 살아도.

덧붙인 말은 물거품처럼 사라졌지만, 데스페라도는 훨씬 안심한 표정으로 팔의 힘을 풀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