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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Dungeon & Fighter

포스트 아포칼립스 드림 합작 / 대전이



데스페라도 드림, 오리주 주의

※ 합작 홈 주소 → http://sgy950.wixsite.com/apocal

 

 

 

전이

writtern by Esoruen

 


 

01.

 

재앙은 언제나 미지에서 찾아오는 법이었다.

 

 

02.

 

기본적으로 아라드 대륙과 천계 사이에는 수많은 장애물들이 존재했다. 바칼이 만들어 놓은 마법진 부터 미들오션, 하늘성, 베히모스, 그리고 부유성까지.

서로가 서로를 전설로 밖에 인식 할 수 없는 구조로 된 세상. 천계에서 아래세계란 어린애들 동화에나 나올 법한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치부되었고, 아라드에서 천계는 환상의 도시처럼 여겨진다. 서로가 교류한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계, 그 단절된 교류의 장을 연 것은, 뜻밖에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대재앙이었다.

 

그날 밤, 천계에서는 자던 사람도 깜짝 놀라 깨어 날 만큼 커다란 지진이 일어났다. 수도 겐트가 있는 황도, 파워스테이션, 그리고 저 멀리 떨어진 무법지대까지 울릴 정도로 강한 지진. 사람들은 이 강한 진동이 거대한 지진이라고 생각하거나 바칼이 다시 되살아 난 게 아니냐며 두려워했지만, 정말 재앙이 닥친 곳은 따로 있었다.

 

이봐, 그 소문 들었어? 아래세계에서 사람들이 올라왔다는 거

? 무슨 소리야? 아래세계?”

 

주점에서 두 남자가 주고받는 대화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아래세계. 공상이라고만 여겨진 세계에서, 외지인이 흘러들어왔다? 술 취해서 헛소리라도 하나, 싶었지만 남자의 표정은 만취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무슨 소리야 그게. 갑자기 아래세계 이야기라니. 뭐 잘못 먹었나, 이 사람이

그게 말이지, 얼마 전에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잖아? 그게 사실 아래세계에서 무슨 일이 난 거라고 하더군

무슨 일?”

그래. 세계 종말!”

 

남자는 점점 가면 갈수록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만을 하고 있다. 무법지대에는 미친놈은 많아도 이정도로 망상이 심한 녀석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의 훔쳐듣던 사람들도 서서히 그럼 그렇지라는 눈빛으로 변해 관심을 끊었지만,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그 대화에 주목하고 있었다.

 

세계 종말이라니. 아래세계가 아주 끝장이 났다 이건가?”

그래. 오죽하면 바칼이 만들어 놓은 결계가 깨져서 천계로 올라올 수 있었다고 하겠나? 아래세계의 인간의 말에 따르면 하늘성도 부유성도 모두 있다고 하더군. 지금은 다 부서졌지만

하하, 그래서 세상이 박살 난 이유는 뭐라고 하던가?”

글쎄다 나도 들었는데 잘 이해는 못하겠어서전이뭐라고 하던데. 뭔가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생명체가 아래세계에 강림해

 

남자의 말은 거기서 끊어졌다. 철컥. 머리에 들이밀어진 총구는 분명 다른 테이블로부터 온 선물.

대화를 나누던 두 남자는 갑자기 자신들을 위협하는 두 리볼버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곤 숨을 멈추었다.

 

그 이야기, 좀 더 자세하게 들을 수 있을까?”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는 루엔은 자신과 데스페라도를 보고 굳어버린 남자들에게 친절하게 물었다.

물론 말투가 친절할 뿐이지, 그녀의 손에 들린 리볼버는 전혀 친절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03.

 

전이. 그것은, 다른 세상의 생명체가 방대한 에너지를 이용해 차원을 넘어 이 세계에 등장하는 현상.

무법지대 사람들은 직접 겪어본 적이 없어 단어조차 아는 자가 드물었지만, 황도군의 부름으로 이래저래 다른 대륙을 오가본 적이 있는 데스페라도와 루엔은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현상인지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카르텔이 황도에 침입할 수 있었던 것도 파워스테이션에 안톤이 전이되어 에너지 공급이 끊긴 것 때문이었고, 지금 복구가 늦어지고 있는 것도 다 에너지를 먹어치우는 안톤 때문이었으니 모를 리가 있나. 그러니 두 사람이 전이라는 말을 듣고 흥미를 보인 것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넌 어떻게 생각해, 그 녀석의 말

 

급하게 황도로 가는 서부선 해상열차를 탄 데스페라도는 도착이 10분도 남지 않았을 때가 되어서야, 그 말의 진의에 관해 입을 열었다. 이론상으로는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이야기다. 사도가 강림하여 질서가 박살이 난 천계인 만큼, 아래세계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면 그러려니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세계 종말이라니. 아예 세계가 박살이 날 정도면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난 사실이라고 생각해. 종말 까지는 오버일지 몰라도, 어느 정도 큰 타격이 있었으니 바칼의 마법진도 깨진 게 아닐까?”

, 그건 나도 동의하지만 종말이라니. 오버가 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서

직접 보면 알게 되겠지. 그래도 생존자가 있을 정도니, 태초로 돌아간 건 아닐 거 아냐?”

 

그래. 누구든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면 최악은 아닌 법이다. 루엔도 데스페라도도 그리 생각했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루프트 하펜에서 겐트까지 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황도의 시민들이 수근 거렸나. ‘아래세계는 그럼 이제 없는 거야?’ ‘안톤 그 이상의 괴물이’ ‘천계도 이렇게 되는 거 아니겠지?’ 공포에 질린 소문들. 전쟁 때 만큼이나 불온한 공기. 황도군들마저도 동요하는 와중, 두 사람의 등장에 젤딘은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두 분, 부른 적도 없는데 어쩐 일이신지

우리가 꼭 불러야만 올 수 있어요? 젤딘, 생각보다 매정하네요?”

그냥 재밌는 이야기가 들려서 왔는데 아무래도 사실인 모양이군

 

루엔과 데스페라도는 한마디도지지 않았다. 원래 이런 사람들이긴 했지만, 지금 만큼은 곤란한지 젤딘이 표정을 찌푸렸다. 지금 겐트뿐만이 아니라 황도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는 걸 모를 리가 없는데, 왜 굳이 와서 벌집을 들쑤시는 걸까. 그래, 이렇게 생각하면 그녀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당연했다.

 

그래서 말이야

 

그런 그녀를 단번에 안심시킨 건, 데스페라도의 다음 한마디였다.

 

아래세계 녀석들은 뭘 타고 왔지? 우리가 직접 가볼까 하는데

……??”

아니, 그러니까. 아래에서 위로 올라올 때, 뭔가 타고 왔을 거 아냐. 설마 그냥 날아왔나?”

아니 물론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걸 왜그것보다 직접 아래세계로 가보시겠다고요?”

 

세계가 종말 한 현장, 그것도 아직도 위험할지 모르는 곳에 자진해서 가겠다는 사람이 있다니. 역시 무법지대 사람은, 아니 데스페라도와 루엔은 정말 별난 사람들이다. 젤딘은 분명 황도군의 입장에선 솔깃한 이야기를 해 오는 두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번갈아 보았다.

 

, 직접 가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올까 해요.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아무리 무법지대에 사는 우리라고 해도 불안해서 못 견디겠거든요

뭐 난 그냥 이 녀석이 가고 싶다고 해서 따라가는 거다만

무사히 돌아오실 거란 보장도 없는데, 괜찮습니까? 아무 정보도 없고,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그런 위험한 곳에

 

젤딘은 두 사람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었다. 단순히 전투능력만 강한 게 아니라, 얼마나 생존력이 강하고 적응력이 강한지 같은 전체적인 강함. 그럼에도 이번만큼은, 역시 저렇게 한번 쯤 경고해 볼 수밖에 없다. 다른 곳도 아니고 아무 정보도 없는 환상이라 생각한 도시의 멸망한 직후 상황을 보러 가는 것이니까.

 

새삼스럽게 왜 그래?”

 

우리는 원래 그만큼 위험한 곳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인데.

그리 대답하는 데스페라도가,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04.

 

마가타라는 탈 것은 마치 배같이 생겼었지만, 여기저기에 날 수 있는 장치가 붙어있는 특이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이런 것을 타고 정말 미들오션을 통과해 올라온 건가. 뭔가 대단한 탈것을 생각하고 있던 루엔은 조금 실망했지만, 데스페라도는 이미 충분히 이런 엉성한 것으로 날 수 있는 게 신기한지 미들오션을 통과하는 동안에도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루엔, 저기 봐

?”

저거

 

데스페라도가 가리킨 것은 무너진 유적 잔해 같은 것이었다. 바다 속에 가라앉지도 떠오르지도 않고 둥둥 떠 있는 건물 파편. 기묘한 풍경이긴 하지만, 역시 어딘가 소름 돋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저게 하늘성의 잔해일까?”

그렇게 보이네. 진짜 있었던 건가

뭐 무너져 버렸지만

무너져도 남아있는 게 다행이라고 할지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군

 

옛 유적이 엉망인 상태라도 보존되어 있다는 건 확실히 좋은 일이다. 하지만 저렇게 무분별하게 떠다닌다면, 마가타랑 부딪혀 사고가 날지도 몰랐다. 역시 재앙이란 다 이런 거지.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소중한 유산들을 망가뜨린다.

 

거의 다 왔어, 마음의 준비나 해 둬

 

아래세계에서 올라올 때 마가타의 조정을 했다던 젊은 남자는 여기저기를 별 위기감 없이 둘러보는 두 사람에게 일렀다. 아까 전 마가타에 태울 때부터 정말로 가보겠냐며 인상을 찌푸리더니, 지금도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다. 역시, 멸망한 세계는 다시 보는 건 생존자에겐 너무나도 가혹한 일인가.

 

, 빛이다

 

마치 수면을 보는 것 같다. 미들오션의 끝, 바닥 그 아래 존재할 푸른 하늘을 생각하며 마가타가 수중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바라보던 두 사람의 표정이 예상 밖의 하늘색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건

 

보랏빛이 섞인 어두운 하늘은 어두운 밤이나 우주를 떠올리게 했다. 이것이, 멸망한 세계의 하늘인가. 루엔은 산산조각 난 하늘성과 미들오션으로 솟구치는 물줄기들에 시선을 빼앗겨버렸다. 마치 폭포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다. 저런 일이 일어난 것도 모두, 전이 때문인가.

 

뭐라고 할까,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못 봐주겠군

나도 그렇게 생각해

 

데스페라도의 감상에 마가타를 몰던 남자가 대답했다. 금방이라도 구토할 것 같이 메스꺼워하는 얼굴. 덜덜 더는 손. 아직도 죽음이 자신만은 비켜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지, 남자의 목소리는 그 손만큼이나 떨리고 있었다.

 

2시간만이야. 2시간 뒤에도 안 돌아오면, 그대로 가 버릴 거니까

알았으니까 그만 말해요, 다녀올게요

 

겁을 먹은 건지 질색하는 건지 고개도 못 드는 남자를 두고 두 사람은 미지의 땅에 발을 디뎠다. 엉망이 된 항구마을. 오염되어 무너진 건축물들과 썩어가는 가로수 사이, 사람들의 시체로 보이는 것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이렇게 되려면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것이 전이되어 와야 하지? 호기심과 공포 사이, 마른침을 삼킨 그녀가 앞서나가는 데스페라도에게 물었다.

 

여기, 그냥 막 들어오면 안 되는 거 아냐? 건물이 녹아내렸는데?”

뭐 당장 죽기야 하겠어?”

여러 의미로 태평하네

하지만 딱히 방법도 없잖아?”

 

그렇다. 일단 주변이 다 이런 상태니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고, 보호구라고 착용하고 싶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런 게 남아있는지 조차도 불확실하다. 일단은 최대한 조심하는 게 최선이겠지. 불안하긴 하지만, 루엔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걸 깨닫고 불평을 멈추었다.

 

천계가 흔들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네

 

이정도 피해라면 아무리 많은 것을 사이에 두고 있다 해도 천계에도 영향이 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데스페라도는 오히려 천계마저 이렇게 무너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천계 전역이 이런 꼴이 되었다면. 자신과 루엔은

 

루엔

……

루엔?”

 

제대로 따라오고 있는 걸까 걱정되어 불러봤지만 대답이 없다. 장소가 장소라서 그런가, 아니면 방금 막 무서운 상상을 한 직후라서 그런 걸까. 겨우 대답이 없는 것뿐인데, 괜히 불길한 예감이 든다. 재빨리 뒤돌아본 그는 다행이 제 시야에 보이는 루엔을 보고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뭐하고 있어? 얼른 와

? 그게

뭘 보고 그래?”

 

루엔은 건물 사이 빈 공간을 주시하느라 오지 않고 있었다. 데스페라도는 당연히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것이나 무언가 이 종말에 단서가 될 만한 것을 발견해서 그녀가 멈춰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녀가 보고 있던 것은 생각보다 대단하지 않았다.

 

 

루엔의 옆으로 바짝 다가와 그녀가 보고 있던 걸 확인한 데스페라도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시선의 끝에 있는 것은 여기저기가 불타서 죽은 남녀. 죽기 전까지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던 건지 여자를 꽉 끌어안은 남자는 맨발에 여기저기 큰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건물들의 잔해 사이, 눈에 띄지 않게 죽어있는 그들을 발견한 루엔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데스페라도는 그 답을 알고 있었다.

 

너 지금 로맨틱하다고 생각했지

너 초능력자야 혹시?”

내가 너랑 같이 산 세월이 몇 년인데, 그것도 모르겠냐?”

 

이미 죽어버렸지만, 그 끝이 함께라면 나쁘지 않다. 게다가 누구 하나 먼저 버리고 도망치지 않고, 이렇게 부둥켜안고 죽었다는 건 얼마나 깊은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가. 확실히, 로맨틱하다고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살아남았으면 좋았을 텐데

뭐 죽은 사람은 다시 살릴 수 없으니까

알아. 그래도 역시 좀마음이 그렇네

가자, 2시간 안에 얼른 둘러보고 가야 황도군 놈들에게도 뭐라고 말이라도 하지

 

망설이는 그녀의 손을 잡고 나아가는 데스페라도는 한 손으로 능숙하게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아까 미들오션에 들어갔을 때 젖지 않았을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잘도 살아남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처음 한 모금의 연기를 들이마셨을 때,

 

데스페라도

 

가만히 있던 루엔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에 저런 상황이 되면, 넌 나 두고 그냥 가도 돼

?”

아니, 그러니까. 세계가 멸망할 때? 평소라면 가만 안 둘 거고 너도 그렇게 안 할 거 알지만

……

 

이 녀석은 뭐라고 하는 거야. 불길한 상상을 한 것은 똑같은지 갑자기 그런 말을 꺼내는 루엔이 귀엽지만, 한편으로는 저 말이 속상해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내가 널 두고 어딜 가. 웃기지도 않는 소리 하지 마

그렇게 대답 할 거 같았어

그럼 왜 말한 거야?”

말하고 싶어서

 

이상한 녀석아무리 오랜 세월을 함께해도, 저런 부분은 이해 할 수 없다. 걷는 속도를 줄여, 그녀의 옆으로 다시 바짝 다가간 그는 자신과 시선을 못 맞추는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질 때 까지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