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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Dungeon & Fighter

월간 드림 5월호 / 꿈을 꾸었다



※ 제너럴 드림, 오리주 주의.

※ 월간 드림 5월호 주소 : http://monthlydream.tistory.com/category/Text/2017%EB%85%84%205%EC%9B%94%ED%98%B8




꿈을 꾸었다

written by Esoruen



 

그녀가 마계로 떠난 지도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사실 일주일이나 흘렀다는 것도, 로잔나가 귀띔해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테지만 말이다.

황도는 전쟁이 끝났지만 하루하루가 바쁘게 변해갔다. 무너진 건물을 다시 세우거나 사상자의 케어를 하는 건 모두 국가의 몫. 황도군의 일원이자 요직을 맡고 있는 제너럴은 전쟁 때 만큼이나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애초에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카르텔 침입을 허용케 한 안톤을 쓰러뜨리고 나니 그 뒤에는 더 큰 배후가 있었고, 그 배후는 나라 하나가 아닌 온 세상을 집어삼키려는 야망이 있었다. 이대로라면 기껏 구한 나라도 멸망하고 만다. 예상치도 못한 배후세력 덕분에 황도 재건에 힘써야 할 황실과 황도군은 계속 전시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그런데 진짜 루크를 죽일 수 있을까요? 사도라는 게 그렇게 간단히 죽지 않는 다는 건 모두가 겪어봐서 아는데.”

일단 죽일 수 있는 이상, 두 사람이라면 반드시 해낼 겁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번엔 제국과 그림시커, 모험가 길드까지 다 같이 나섰으니까 사도라 하더라도 방도가 없을 겁니다.”

 

서류를 내밀며 걱정스럽게 말하는 로잔나에게 제너럴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부하의 걱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는 정말로 두 사람이 루크를 섬멸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비록 황도군은 아니지만, 루엔과 데스페라도와 함께 싸워온 세월은 길었으니까.

처음에는 카르텔, 그 다음에는 안톤. 쉴 틈도 없이 이어지는 큰 전쟁에서 두 사람은 최고의 아군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황도군에서도 요직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공적을 세워놓고도 여전히 무법자로 지내는 게 신기할 정도였지. 하지만 제너럴은 두 사람의 선택을 이해 할 수 있었다. 자유로운 두 사람에겐 어딘가에 얽매이는 자리는 어울리지 않지. 그게 설령, 안전을 보장받는 자리라고 해도 말이다.

 

, 군인은 안전하지도 않은가.’

 

물론 무법자 생활보다는 안전하겠지만. 제 속마음을 정정한 제너럴이 자꾸만 흐려지는 눈을 거칠게 비볐다.

 

피곤하십니까?”

? . 괜찮습니다.”

전혀 안 괜찮아 보입니다만, 주무시긴 하신 겁니까?”

…….”

 

제너럴은 대답 대신 침묵을 고수했다. ‘하아.’ 로잔나의 한숨이 무거웠다. 아무리 바빠도 식사랑 잠은 거르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제 상사는 언제쯤 스스로를 돌볼까.

 

잠깐이라도 좋으니 주무세요. 서류 좀 늦는다고 뭐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아니, 하지만.”

로시스 양이 돌아왔을 때 다 일러도 좋다는 거죠?”

…….”

 

제 부하에게 고집을 피우는 거야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녀를 걸고 넘어간다면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부하에게 밉보이는 것도 싫지만, 좋아하는 여자에게 밉보이는 것은 더더욱 싫다. 그리고 밉보이는 것 이상으로, 그녀를 걱정시키는 것이 싫으니 저렇게 나올 땐 제너럴도 방도가 없었다.

 

전 나가 볼 테니 쪽잠이라도 주무세요. 어차피 방에 가서 주무시라고 하면 절대 안 하실 거잖아요?”

저에 대해 너무 잘 아시는 군요, 로잔나.”

오래 모셔왔으니까요.”

 

씁쓸하게 웃은 그녀는 그대로 훌쩍 나가버렸다. 정말로 재울 생각이니 아마 몇 분 뒤 또 와볼 것이다. 그녀 말대로 함께해 온 시간이 긴 만큼 로잔나에 대한 것을 잘 아는 제너럴은 책상을 간단하게 치우고 그 위에 엎어졌다.

사람에게는 수면과 밥 그리고 산소가 필요하다. 산소야 그 질과는 상관없이 늘 주변에 널려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지만, 수면과 밥은 따로 챙겨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도 수면이 부족하게 되면 강제로 기절하게 되니, 역시 제일 귀찮은 건 밥일까. 엎드렸지만 여전히 머리는 바쁘게 돌아가는 제너럴이 한 손을 제 배 위에 얹었다.

허기지다는 느낌은 있지만, 그다지 입맛은 없다. 맛없는 전투식량을 먹거나 굶는 것이 일상이었던 삶이었으니 어쩌겠는가. 그는 입이 짧아질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말이 좋아 장군이지. 이렇게 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인간다움 앞에서 권력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자고 싶지 않은데.’

 

졸리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머리가 무거워서 글씨가 잘 안보일 정도로 졸리고 힘도 안 들어간다. 철야에 익숙해져있다고 졸리지 않을 리 있는가. 자신은 사람이었다. 사도도 마계인도 흑요정도 아닌. 평범한 사람. 그런데도 자고 싶지 않은 건, 모두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가장 최근에 잤던 게 언제였지. 잠들고 싶지 않은 그는 최대한 다른 생각을 하며 의식이 흐려지지 않게 했다. 머리가 멍해져서 확신은 못하지만 잠깐 졸았던 것 까지 포함하면 어제 새벽 마이스터를 기다린다고 그의 연구실에 갔다가 앉아서 졸아버린 게 마지막 잠이었지.

 

너 얼마나 안 잔 거야? 이 추운 곳에서 잠이 와? 얼어 죽는다?”

 

자신을 발견하고 깨운 마이스터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었지. 자리를 비운다고 난방도 끈 연구실은 확실히 추웠으니 저리 걱정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잔소리를 하는 마이스터에게 아무 말도 못했던 제너럴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제 용건만 말했지만, 사실 반박을 하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 상황에서 옛날엔 더 추운 곳에서도 자봤다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을 다문 건 그 상황에서 나올 변명이 더 처참한 것이기 때문이었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진 제너럴이 자세를 조금 더 편하게 고쳤다. 이미 감은 눈꺼풀이 너무도 무거워서, 고개가 책상과 부딪힐 정도로 푹 숙여졌다.

그때는 아무 꿈도 안 꿔서 정말 좋았는데. 깨어났을 때 지독하게 추웠고, 자세가 불편해 고개랑 허리가 아팠지만, 그런 건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좋았는데.

 

왜 그렇게 잠을 안 자? 악몽이라도 꿔?”

 

차라리 악몽이라면 두려워도 잠들 수 있겠지요.

마이스터에게 대답하지 못했던 말을 머릿속으로 중얼거린 그는 속수무책으로 잠들어버렸다.

 

 

❋ ❋ ❋

 

 

제너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는 상냥하고 활기찼다. 아아. 결국 또. 저항을 포기하고 눈을 뜬 그는 자신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루엔을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

 

이 꿈도 벌써 일주일째다. 정확하게 그녀가 마계로 떠난 그 이후로, 잠든 날은 빠짐없이 이런 꿈을 꾼다. 제너럴은 현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선명한 루엔의 형상에 언제나 할 말을 잃고, 꿈에서 깨어야 한다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늘 꿈이 깨지 않기를 바랐지. 그러면 안 되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 말이다.

 

또 밥 거르고 왔죠?”

미안해요. 그래도, 굶은 건 아니니까. 뭐라도 먹었어요. 정말이에요.”

, 알았어요. 제너럴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으니까 믿을게요!”

 

그렇게 까지 자신을 믿어주는 것은 고맙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괜히 마음이 불편해진다. 루엔의 말대로 자신은 그녀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거짓말을 안 했을 뿐 완전히 진실을 말한 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잠들기 전까지 자신이 먹은 음식물이라곤 커피랑 다과가 전부였다. 그 마저도 회의 중 준비된 거였으니, 지금쯤이면 소화가 다 되었을 시간이지. 양도 많지 않았고, 양이 많다 하더라도 겨우 과자가 얼마나 식사대용이 되겠는가.

 

엔은 잘 지내나요?”

 

어차피 꿈속의 인물인데 그런 걸 물어 뭘 하겠는가. 하지만 제너럴은 저 말을 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었다. 카르텔과 싸울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은 늘 루엔을 걱정하고 그리워했으니까. 그의 질문은 예의나 겉치레가 아닌 언제나 하는 걱정의 연장선일 뿐이었다.

 

. 저야 뭐 늘 잘 지내죠!”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꿈에서도, 꿈 밖에서도.

그래. 무법지대에서도 악몽이라 불리고 경외의 대상이 되는 여자가 못 지낼 이유가 무엇이 있는가. 제너럴은 몇 년간 같은 질문에 같은 답을 들어왔다. 잘 지낸다는. 진짜인지 거짓말인지도 모를 말을.

그러니까 이렇게, 꿈에서도 똑같은 대답을 듣는 거겠지. 제너럴은 식은땀도 나지 않는 제 얼굴을 마른 손으로 쓸었다.

 

.”

 

조심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부른 제너럴이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보라색 눈동자는 어둠을 모르는 별 마냥 빛나고 있다. 꿈속에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현실의 그녀는 얼마나 찬란한 빛으로 빛나고 있을까. 제가 가지 못한 곳에서. 제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살며시 마주잡은 손은 꿈인 걸 잊게 만들어 줄 정도로 따뜻했다. 그는 자신을 멀뚱멀뚱 바라보는 사랑하는 여자의 얼굴에 간곡히 부탁했다.

 

더 이상 날 만나러 오지 않아도 돼요.”

 

내뱉은 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울기 직전에 내뱉는 숨처럼, 힘없고, 애처롭게.

 

아무리 오래 걸려도 기다릴게요. 알고 있어요. 엔은 강하고 그 사람도 강하니까. 무사히 돌아올 거라는 걸. 그러니 자꾸 여기에 나타나지 말아요. 제가 약해질 빌미를 주지 마세요.”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꿈을 뿌리칠 수 없는 자신이 나쁜 거지, 꿈에 나온 그녀가 나쁠 리 없다. 애초에 꿈이란 그 사람의 무의식을 반영한 거라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자신은 그녀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탁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부조리함뿐인 변명의 무게도, 조금은 가벼워졌다.

손을 잡힌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루엔은 그의 말이 끝난 후에도 손을 빼지 않았다. 얌전히 제너럴의 손을 잡고 시선만 이리 저리 피하던 그녀는, 한참을 뜸들이다 결국 웃으며 마주잡은 손을 제 얼굴로 가져갔다.

 

알았어요. 제너럴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 장난스럽게 제너럴의 손에 입을 맞춘 그녀가 뒤로 한 걸음씩 물러섰다.

잠깐만.’ 제 입으로 더 이상 오지마라고 해 놓고, 그는 멀어지는 루엔에게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더 이상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지금 당장 가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이왕 시작된 꿈이라면, 조금 더, 보지 못한 시간만큼 함께 하고 싶은데.

 

제너럴?”

.”

 

헛숨을 들이키며 고개를 든 제너럴은 제 얼굴 가득 느껴지는 찝찝함과 더운 숨에 인상을 찌푸렸다. 꿈에서 깨어났다. 그거 하나 만큼은 확실하게 인식했지만, 자신은 왜 이렇게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가.

자신을 흔들어 깨운 부하는 굉장히 난감한 얼굴로 제 안색을 살피고 있었다.

로잔나인가. 아니, 에스메랄다구나. 막 잠에서 깼지만 제 부하 정도는 금방 알아보는 제너럴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

 

제너럴, 괜찮습니까? 괜히 깨웠나요?”

. 아아. 그런 거 아닙니다. 괜찮고 말고 할 것도 없고.”

하지만 제너럴, 울고 있는걸요.”

?”

 

설마. 이 찝찝한 습기는 땀이 아니었던 건가. 제너럴은 그제야 제 뺨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이 눈물이라는 걸 알았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도 서러워서 울어버린 걸까.

또 같은 꿈을 꾼 것 때문인가, 아니면 더 이상 그 꿈을 꿀 수 없기 때문인가.

이유도 알 수 없는데 자신이 울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어이가 없는지, 제너럴은 헛웃음을 지으며 젖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가볍게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