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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기타

꿈왕국 봄꽃합작 / 시들지 않는 꽃



※ 귀도 드림, 오리주 주의. 해각 스포? 있습니다. 주제 꽃은 목련.

※ 합작 홈 주소 → https://apppebunny.wixsite.com/springflower




시들지 않는 꽃

written by Esoruen




아임의 봄은 느리게 오고 빠르게 가버렸다. 훈훈한 공기가 점점 더워지고, 나무들의 꽃이 지고 잎이 피어나는 늦봄과 초여름의 사이. 레나는 서늘한 목련 나무 아래에 앉아, 추격자를 따돌리느라 시간이 걸릴 귀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더 늦으시네.’

 

이제는 익숙해 질 때도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역시 언제 암살당할지 모르는 삶을 곁에서 지켜보는 건 괴로운 일이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것은 제가 아니었지만, 레나는 언제나 귀도의 인생을 곱씹을 때 마다 온 몸이 아팠다. 누구든 삶의 희망보다 죽음의 공포를 가지고 살아가는 건 눈물 나는 일이었고, 그게 제 연인이라면 무엇보다도 괴로운 일이 되는 법이었으니까.

좋지 않은 생각만 하면 몸도 마음도 지친다. 그는 무사히 제게 올 것이다. 긍정적인 믿음으로 생각을 환기시킨 레나는 목련나무의 그늘 밖으로 손을 뻗었다.

 

아기 고양이, 목련은 왜 북쪽을 보고 피는 지 알아?’

 

머릿속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마치 지금 곁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선명하다. 막 봄이 왔을 몇 달 전, 그가 막 피어난 목련을 보며 해준 이야기의 첫머리였다.

귀도가 들려준 이야기는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던 목련의 전설이었다. 옛날에 어느 공주가 북쪽 바다에 사는 바다의 신을 사랑하게 되어 제게 오는 모든 청혼을 뿌리치고 사랑을 찾아 떠났는데, 알고 보니 바다의 신은 이미 아내가 있어 공주의 사랑을 받아 줄 수 없었다고 한다. 사랑을 잃은 공주는 실의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북쪽 바다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고, 바다의 신은 이를 슬퍼하며 공주를 손수 묻어주었다.

여기까지 들으면 그저 슬픈 설화 중 하나일 뿐이었겠지만, 귀도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바다의 신은 생각했어. 제가 원치도 않아서 한 결혼이 한 생명을 죽였으니 이 부부관계는 끔찍할 뿐이라고.’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이혼이라도 한 건가요?’

독약으로 아내를 죽여서 공주의 곁에 묻어줬어. 무섭지?’

 

아아. 그건 확실히 무서웠지. 레나는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은 귀도의 얼굴과 이야기의 내용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하다고 하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너무 많은 이야기의 끝은 예상보다 평범했다. 그렇게 바다의 신을 사랑해서 죽은 두 여인의 무덤에선 꽃나무가 자라났고, 그것이 목련이었다는 시시한 엔딩. 다만 굳이 이 엔딩에 특별한 점을 찾자면, 두 무덤에서 피어난 꽃의 색이 달랐다는 거였을까.

 

분명 공주의 무덤에는 백목련이, 아내의 무덤에는 자목련이 피었다고 했지.’

 

어째서 다른 색의 꽃이 피었는가. 거기엔 또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고 하며 귀도는 이야기를 마쳤었는데. 뻗었던 손을 거둔 레나는 손끝에 남은 온기를 만지는 것처럼 손가락을 가볍게 문질러 보았다.

분명 제가 지금 기대고 있는 이 나무에는, 붉은 색의 목련이 피었었지.

저런 전설을 들어서였을까. 올 봄의 시작부터 끝까지 레나는 이 목련 나무를 유심히도 지켜봤었다. 언제 꽃봉오리가 모두 피는지, 언제 첫 꽃잎이 지는지, 땅에 떨어진 꽃잎은 어떻게 흙으로 돌아가는지.

매년 반복되는 꽃의 탄생과 죽음 속. 목련은 그 순환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엔 부적절한 꽃일지도 몰랐다. 벚꽃이나 매화 같은 다른 꽃나무들은 꽃잎이 질 때 특별한 아름다움을 주었지만, 목련의 낙화는 그 어디에도 반기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막 떨어진 직후는 그나마 봐줄 만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누렇게 변색되고 갈색으로 썩어 들어가며 불쾌한 냄새를 풍긴다. 어째서 목련만 이렇게 처절한 마지막을 가진 것일까. 옛날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이제는 알 수 있다.

 

미안해, 많이 기다렸어? 레나.”

.”

 

이제는 흔적도 없는 목련꽃을 떠올리던 그녀는 제 앞에 드리우는 그림자와 상냥한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연인의 등장이었다.

오늘은 다치지 않은 걸까. 멀끔한 복장과 여유로운 얼굴로 등장한 귀도는 언제나 그랬듯이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

 

, 더 늦기 전에 점심 식사를 하러 갈까?”

. 좋아요. 얼른 가요.”

 

희미하게 웃으며 손을 잡은 레나는 가뿐히 일어서며 제 치마를 털었다. . . 손길에 따라 흩날리는 흙먼지에서, 어렴풋이 목련꽃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기다리는데 지루하지는 않았어? 이럴 줄 알았다면 조금 더 늦게 만나자고 할 걸 그랬네.”

저는 괜찮았어요. 당신이 해준 이야기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내가 해준 이야기? 어떤 이야기일까?”

목련 말이에요. 그 전설.”

 

, 그거.’ 귀도는 뒤늦게 레나가 기대어 앉아있던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를 눈치 채고 웃었다.

 

그 전설이 신경 쓰였어?”

전설 그 자체보다는, 목련꽃이 가지는 의미가 신경 쓰였어요.”

의미라. 분명 자목련의 꽃말은 숭고한 사랑이었지.”

아뇨. 꽃말이랑은 관계없어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나무에 붙어있을 때는 그리도 아름다운 꽃잎들이, 바닥에 떨어진 이후로는 추하게 썩어 문드러져 버린다. 그 모양새는, 그야말로,

 

목련은 실연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흐음?”

한 번 떨어지면, 그대로 돌이킬 수 없는 거예요. 아름답게 포장할 추억을 찾기도 전에, 색을 잃고 형태를 잃고 새까맣게 변해 사라지는 거죠. 실연이랑 똑같아요.”

듣고 보니 그렇구나. . 굉장히 흥미로운 생각이야.”

 

꽤나 우울한 관점이지만, 귀도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차피 그런 전설을 가진 꽃나무다. 이 정도로 우울하고 솔직한 것은, 오히려 이제는 지고 없는 꽃들과 잘 어울리지 않을까?

 

그러면 목련은 매년 제 밑에 실연들을 쌓고, 또 그 영양분으로 꽃을 피워 실연을 낳는 게 되는 걸까요.”

사랑의 반복과 비슷하네.”

하지만 나는 목련이 되고 싶지 않아요. 언젠가 내가 귀도 곁에 없게 되면, 나랑 함께 한 추억들은 아름다운 부분만 왜곡된 채 남아서 귀도를 행복하게 해주면 좋겠어요.”

 

이런, 꽤나 지고지순한 마음이다. 귀도는 레나의 말에 두 눈을 크게 뜨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

그렇구나. , 나에게 있어 너는 시들지 않는 꽃이지만.”

 

시들지 않으니 변색되는 일도 썩는 일도 없을 거야.

그렇게 속삭이듯 덧붙인 귀도는 레나의 손등에 가볍게 키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