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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기타

보석의 나라 드림 합작 / 먼 선조의 이야기



※ 보석의 나라 아쿨레아투스 드림, 오리주 주의

※ 합작 홈 주소 → http://dreamthelustrous.creatorlink.net/




먼 선조의 이야기

written by Esoruen




웬트리코스스 폐하와 아쿨레아투스 왕제님이 우리를 달에서 되찾아 온 것은 전하의 화상이 모두 치료 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밤이었다.


모두는 아니더라도 꽤 많은 수의 동족들이 우리의 집으로 돌아왔고. 천운이 도운 것인지 그 안에는 플랑크톤의 맛도 잘 기억하지 못할 만큼 젊은 나도 들어있었다. 분명 아쿨레아투스 님이 신경을 써 준 결과물이었겠지만, 작고 볼품없으며 기력도 많이 소모되어있던 나는 달에서 벗어난 후에도 한참동안 자아를 되찾지 못했었지.

‘그런 계집애 하나 신경 쓰시지 않으셔도 될 텐데.’ 몇몇 동족들은 나를 굳이 데리고 왔어야 했냐고 투덜거렸지만,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웬트리코스스 님의 반응은 냉정하기 짝이 없었다고 했다. 


“그대들 중 누가 식사와 싸움밖에 모르는 내 아우를 다룰 수 있지? 자신이 있다면 지금 당장 초조함에 못 이겨 온 몸을 비트는 아쿨레아투스를 말려줬으면 하는데.”


그 말 한 마디에 모두가 조용해지는 것이 참 절경이었다고 했는데. 어쩐지 못 본 게 아쉽다. 아, 물론 못 본 것은 내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애초에 저 때 아쿨레아투스 님이 초조해 한 것도 나 때문이었다고 하니, 내가 느껴야 할 감정은 아쉬움이 아니라 죄송함이겠지.


“오, 정신이 들었나? 꽤 오래 꿈속에 빠져있었군. 레티쿨라투스.”


내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원래의 모습을 찾았을 때, 내 머리맡에 앉아있던 아쿨레아투스 님은 이젠 지쳤다는 듯 허탈하게 웃으며 그리 말했었다. 안 그래도 성격이 급한 분이 나 하나 때문에 어디 가지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 기다렸다니. 너무 놀란 나는 몸을 일으켜 내 등을 토닥이는 검은 촉수를 마주잡았다.


“아쿨레아투스 님, 여긴…. 아니 그 이전에, 괜찮으세요?”

“응? 무엇이? 아. 그래, 너는 이제 정신이 들었으니 모르겠구나. 나와 누님은 괜찮아. 조금 다쳤지만 금방 나았고, 모두는 아니지만 제법 많은 동족을 탈환할 수 있었지. 과정이 조금 힘들었지만, 잔뜩 싸울 수 있어서 좋았어.”


아아. 이 얼마나 왕제님다운 대답인가. 막 정신이 든 차라 의식이 몽롱하긴 했지만, 나는 지금 이 상황이 꿈이 아닌 걸 저 말 한마디로 눈치 챌 수 있었다.

드디어 그 지긋지긋한 애완동물 생활도 끝이다. 여긴 달이 아니라 우리의 바다고, 나는 안전하게 왕제님 앞에서 눈을 떴다.

그 모든 것이 감격스러워 넋이 나간 나는 내 손에 감겨오는 촉수가 내 얼굴 쪽으로 향하는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정말이지, 3일이 지나도 자아를 찾지 못해 얼마나 애가 탔는지. 이런 내 마음을 네가 알아 준 다면 좋을 텐데 말이야. 누님도 어찌나 놀려댔는데.”

“그건…, 죄송합니다.”

“사과하라는 의미는 아니었어. 약혼녀를 기다리는 건 당연한 거니까. 그나저나 못 본 사이에 많이 늠름해졌구나. 어릴 때는 한 입에 삼킬 수 있을 정도로 작았는데.”


내 뺨을 쓰다듬으며 웃는 아쿨레아투스 님은 너무 즐거워 보여서, 차마 ‘그건 정식으로 한 약혼도 아니지 않나요?’같은 말은 할 수 없었다. 어릴 때 장난삼아 한 약속을 아직까지도 진지하게 믿고 계시다니. 나야 더없이 영광이긴 한데, 왕제님인 분이 저래도 되는 걸까. 이래서야 폐하가 걱정하고 잔소리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다른 이들이 들으면 기겁할 소리는 하지 말아 주세요, 아쿨레아투스 님.”

“흠?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약혼이라던가….”

“그게 왜 기겁할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날 감당할 여인은 너 정도뿐이라고 생각해서 진지하게 이야기 하고 다니는 거였는데.”

“…….”


확실히, 동족 여성체들 중에서 아쿨레아투스 님과 대결해서 대등하게 승부를 낼 수 있는 건 나뿐이긴 하지. 나는 작고 수수하지만, 그 대신 빠르고 민첩했으니까. 그 먼 옛날, 아름답지 않아도 강하니 가치가 있다고 한 것도 아쿨레아투스  본인이셨으니 이런 선택도 이해는 하지만…. 신붓감을 고르는 기준이 저것뿐이라니, 정말 괜찮은 걸까. 이 왕제님.

물론 그때 내가 한 걱정이 입 밖으로 뱉어지는 일은 없었다.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아쿨레아투스 님이 말을 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산책이라도 갈까. 생각보다 고향이 많이 변했어. 너와 함께 둘러보고 싶어 기다렸지.”

“일단 폐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요.”

“나보다 누님이 더 중요한가…?”

“…역시 몸만 커지셨네요, 아쿨레아투스 님. 어릴 때랑 이렇게 똑같으실 필요는 없어요.”

“이거 섭섭한데. 너도 어릴 때와 똑같아, 레티쿨라투스.”


쿡. 이마를 툭 친 촉수는 순식간에 멀어졌고, 비어버린 시야에 대신 다가온 것은 수려한 손이었다.

아. 옛날부터 변함없는 이 손길을 나는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혼란스러움의 끝에서 안도감을 얻은 나는 그제야 웃으며 왕제님의─ 아니, 지금 나의 부서(夫壻)가 되는 이의 손을 마주잡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