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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Dungeon & Fighter

가면 무도회 합작 / 마스크들의 술래잡기


※ 데스페라도 드림, 오리주 주의

※ 합작 홈 주소 : https://owl0925.wixsite.com/masquerade0dream/





마스크들의 술래잡기

written by Esoruen



제 연인의 장난기에 대해 자각한 것은 언제였던가. 너무 오래전이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동거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던 건 확실하다. 연인이 되기도 전, 단순히 같이 다니며 공동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는 상대에게도 사소한 장난을 치는 그녀였으니 더 가까운 사이가 된 지금은 오죽하겠는가. 어쩐지 눈앞이 깜깜해진 데스페라도는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맞아, 내기 하나 하지 않을래? 네가 이기면 소원 하나 들어줄게.’

 

어제의 그녀는 또 무슨 장난을 치려고 그런 제안을 했던 걸까. 하지만 그는 제안 뒤에 따라온 보상에 마음이 혹해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어차피 평소의 자신과 루엔 사이는 워낙 원만해 들어 달라 말할 소원 같은 것도 없었지만, 혹시 모르지 않나. 언젠가 위험한 상황에서 그녀가 고집을 부린다면 이런 걸 빌미로 삼아서라도 말릴 수 있을지.

 

그래서, 내기 내용이 뭔데?”

이 안에서 본인 찾기. 제한시간은 한 시간.”

한 시간 정도면 여유 있겠네. 솔직히 그 녀석은 얼굴 하나 가렸다고 정체가 숨겨질 만큼 개성 없는 인간이 아니잖아?

 

마이스터의 말이 맞다. 제 연인은 키도 평균 신장 이상이고 몸짓도 얌전하지 않은 편이라 사람들 틈에 섞여있어도 쉽게 눈에 띄었으니까. 다만, 이렇게나 사람이 많으면 역시 한 눈에 알아보기는 힘들지. 게다가 평소의 옷차림도 아니라면, 난이도는 조금 더 올라가고 만다.

 

, 그러고 보니 못 찾으면 패널티 같은 건 없어?”

그건 딱히 안 정했는데. , 녀석도 그냥 재미로 벌인 일이니 생각 안 해 둔 거겠지만.”

루엔도 너도 피곤, 아니, 재미있게 사네.”

말 안 돌려도 돼. 나도 피곤하다 생각하고 있으니까.”

 

하긴. 그라면 애초에 이런 가면무도회도 루엔이 아니었다면 오지 않았을 테니 피로함을 넘어 짜증까지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마이스터는 다 이해한다는 얼굴로 가볍게 그의 등을 두드렸다. 옆에서 보는 제 3자 입장에서야 재미있지 찾는 쪽은 분명 스트레스일 텐데, 왜 데스페라도는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린 것인가. 기계랑 평생을 살아온 그로선 이해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이 술래잡기를 말릴 생각도 없었다.

 

, 그런고로 난 간다. 너도 이런 곳은 싫을 텐데 용케 왔네.”

블래스터가 넌 매일 방에 처박혀 있으니 어쩌고저쩌고.’ 하는 잔소리를 해서. 당분간 그런 소리 못하게 왔지. 그리고 나도 만날 사람이 있거든. 건투를 빌게.”

 

마이스터가 사람을 만나러 왔다, . 어차피 상대는 세븐 샤즈나 그 관계자겠지. 대수롭지 않게 그의 말을 흘러 넘긴 데스페라도는 인파 속으로 발을 들였다.

남녀노소가 뒤섞여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은 마치 악몽의 파편처럼 흉흉한 느낌을 준다. 어째서 황도의 귀족들은 이런 파티를 좋아하는 걸까. 무법지대서 태어나 죽지 않는 것을 삶의 최우선으로 삼아온 그에겐, 가면무도회는 하나의 악취미로 보이기까지 했다.

이렇게 얼굴을 가리고 있으면 누가 몰래 죽여도 모르겠는데. , 타깃을 찾는 것도 힘들어지니 리스크는 동등한가.

파티랑은 전혀 관계없는 생각들을 하며 눈앞의 사람들을 훑던 그는 문득 지나가는 흑발의 여성에게 시선을 돌렸다. 물론, 시선을 돌린 지 3초도 되지 않아 고개를 돌려버렸지만 말이다.

 

이 안에 있긴 한 건가.’

 

수많은 머리색이 존재하는 천계에서, 흑발에 긴 머리가 이렇게 많다는 걸 실감하긴 처음이다. 물론 키는 제각각이라 어지간히 크지 않은 이상은 오래 살펴보지도 않았지만, 그놈의 가면들 때문에 정신이 사나워서 헷갈릴 리 없는 것들까지 헷갈릴 것 같았다.

 

, 그러고 보니 그걸 잊었군.”

 

한창 술래잡기에 빠져있던 데스페라도는 한 발 늦게 마이스터에게 전하지 않은 말이 있다는 걸 떠올렸다. 그리 중요한 말은 아니지만, 생각났을 때 말해놓지 않으면 또 잊어버릴 게 분명하니 지금 말해두는 게 좋겠지. 아까 전 왔던 길을 되돌아가던 데스페라도는 여전히 주변을 살피는 걸 게을리 하지 않았지만, 아쉽게도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하지만 노력하는 자에게는 무엇이든 보상이 온다 하던가.

마이스터를 발견하고 그에게 다가가려던 데스페라도는, 이미 그가 누군가와 대화 중인걸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과연, 저 사람이 아까 말했던 만날 사람인가. 가면을 쓰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여자라는 것 하나는 확실해 보였다. 세븐샤즈는 아닌 것 같은데, 누구일까. 어차피 일 이야기나 하고 있겠지만, 사교성이 워낙 없는 마이스터와 저렇게 편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니.

 

?’

 

도대체 뭐하는 자이기에 마이스터랑 저렇게 친근하게 대화하고 있는가. 그게 궁금해서 낯선 상대를 지그시 보던 데스페라도는 기묘한 기시감에 인상을 찌푸렸다. 옅은 금발머리는 제가 찾는 사람의 특징과는 완전히 다르지만, 드러난 목선은 지나치게 익숙하다. 저 손짓, 서있는 모습. 이건 아무리 봐도.

 

루엔.”

 

역시나 정답이었나. 마이스터와 이야기를 나누던 여성은 슬쩍 입을 가리고 한 발짝 물러서더니 마이스터의 뒤에 쏙 숨어버렸다.

아아, 그러니까 안 한다고 했는데.’ 곤란한 얼굴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마이스터는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데스페라도를 말리지도, 쫓아내지도 않았다.

 

마이스터, 잠깐 비켜줬으면 하는데.”

뭐 상관은 없는데, 오해 하지는 말라고. 나도 루엔에게 부탁받은 거니까.”

알아. 넌 자기 무덤 파는 짓은 안 하니까.”

허어,”

 

의심하지 않아주는 건 고맙지만, 저렇게 말하면 켕기는 게 없더라도 무서워진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떠주었고, 이윽고 그 자리에는 가면을 쓴 여자와 데스페라도만 남겨졌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변장까지 하고 숨은 곳이 겨우 마이스터 옆이라니. 김빠지는데.”

어라, 무슨 소리야?”

 

이미 들킨 이상 발뺌은 하지 않는다. 피식 웃고 맨얼굴을 드러낸 루엔은 제 머리를 다 덮은 답답한 가발을 훌렁 벗어버렸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잖아? 애초에 네가 돌아오지 않았으면 안 들켰을 거 같은데.”

그래, 젤딘의 말을 전해주려다가. . 이런.”

 

눈앞에 놓인 술래를 잡느라, 정작 원래 돌아왔던 이유는 잊어버리다니. 오늘의 자신은 왜 이렇게 허술하고 산만한 걸까. 이게 다 이 악취미 같은 무도회 때문이다. 그는 쓰고 있는 건지 걸치고 있는 건지 모를 제 가면을 치워버리고 루엔의 손을 잡았다.

 

내가 이긴 거지?”

물론이지. 그래서 소원은?”

그건 일단 보류해놓지. 내가 생각났을 때 내 마음대로 쓸 거야. 그것보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마이스터에게 다녀올 테니까.”

하하. 그래. 한 번 잡힌 술래니까 도망은 안 친다고? 얼른 다녀와.”

 

처음부터 이겨먹을 생각은 없었던 걸까. 루엔은 오늘따라 유난히 정신 사나운 데스페라도를 보며 웃기만 할 뿐, 어떠한 불평도 하지 않았다.

아아. 혹시 제 연인은 애초에 자신을 당황시키기 위해 이런 짓을 벌인 게 아닐까.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그도 조금 오기가 났다.

 

잽싸게 다녀올 테니, 여기 가만히 있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화낸다.”

네가 나한테 화를 낸다고?”

그래. 어떤 방식으로 화낼지는 내 마음이지만. 그러니 알아서 해.”

 

묘한 미소를 남긴 데스페라도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마이스터를 찾기 위해 서둘러 가버렸다. ‘.’ 우두커니 서서 그의 말을 곱씹던 루엔은 오래 망설이지 않고 다시 가면을 썼다. 그가 어떻게 화낼지 궁금해졌으니, 가만히 있을 수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즐거운 가면무도회가 되겠는걸.”

 

이로서 술래잡기 2차전의 시작이다. 그녀는 소리 소문도 없이 인파속으로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