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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Dungeon & Fighter

2015 크리스마스 드림 합작 / 메리 크리스마스



※ 데스페라도 드림, 오리주 주의

합작 홈 주소 → http://zteemille.wix.com/dreamas

 

 

 

메리 크리스마스

written by Esoruen

 

 


사람의 피는 왜 빨간색일까. 루엔은 새삼스럽지만 바닥에 튄 수많은 카르텔의 피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뭐, 과학적으로 따지고 들면 헤모글로빈이 어쩌구 적혈구가 저쩌구 한 이유인 것 같지만, 제가 궁금한 것은 그런 답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 굳이 과학적인 것까지 걸고 넘어가는 방식으로 묻자면, 어째서 피의 색을 정하는 것들이 모두 붉은가, 에 대한 물음에 가까울까.

만약 사람의 피가 파란색이었다면, 이렇게 기분 나쁘지 않았을까. 아니, 극단적으로 아예 검은색 이거나 흰색인 것도 나쁘지 않을 테지. 이제는 너무 피를 봐서 무감각해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붉은 피의 색은 기분 나쁜 것이었으니까.

 

“자, 너도 모른다고 할 셈이면 그냥 죽어”

“진짜 모른다니까…! 애초에, 우리 같은 졸개가 뭘 알겠어!”

“아, 그래? 그럼 죽어야지 뭐”

 

이미 다리와 팔에 총을 맞아 반격도 도주도 할 수 없는 남자는, 무심한 표정으로 리볼버의 탄창에 총알을 채우는 루엔에게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 애초에 무법지대의 악몽이라고 불리는 여자. 제가 원하지 않는 답을 내놓는 상대를 봐줄 만큼 녹록할리 없었다.

 

“거 이브 날에도 가차 없네, 악몽 씨”

“죽는데 이브고 아니고가 어디 있어?”

“그건, 그렇군”

 

하하. 남자의 자조적인 웃음을 끊은 것은 리볼버의 총성이었다.

방 안에 자신 외의 모든 생명체를 제거한 루엔은 아직 뜨거운 총구를 후 불고 문고리를 당겼다. ‘그나저나, 이브?’ 방을 나와 복도를 걸으면서야 방금 제가 죽인 상대의 말을 곱씹어 본 그녀는 그제야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다른 날도 아니고 1년에 한 번 뿐인 크리스마스도 잊어버리다니. 자신들은 그동안 얼마나 정신없이 살았던 건가. 분명 작년에는, 나름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내고 케이크도 먹었던 것 같은데.

 

‘분명 데스페라도도 까먹고 있겠지’

 

뭐, 잊어버리고 있다고 해서 원망한다거나 섭섭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자신도 방금 전까진 새까맣게 잊고 있었고, 자신들은 하루하루 살아남는 게 급하지 종교의 기념일을 챙기는 건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뭐, 그래도 돌아가는 길에 케이크라도 사갈까?’

 

그는 단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기념일에 케이크 정도는 어찌되든 개의치 않는 남자였으니까. 무엇보다도 그가 싫어한다 해도, 제가 먹고 싶었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는가. 루엔은 여차하면 자신 혼자서 케이크 한 판은 다 먹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무사히 돌아가게 되면 생각해 볼 문제.

그녀에게 지금 더 중요한 건 이 카르텔의 소굴에서, 신속히 간부를 찾아 처리한 후 무사히 빠져나가는 일이었다.

 

‘탕!’

 

루엔은 제 뒤에서 느껴진 인기척에 돌아보지도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커다란 몸뚱이가 쓰러지는 소리가 난 후에야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한방에 골로 간 적. 왼쪽 가슴 언저리, 총을 맞고 쓰러진 낮선 남자는 자신을 공격할 생각이었는지 손에 나이프를 쥐고 있었다.

 

“데스페라도는 괜찮을지 모르겠네”

 

이 세상에 그의 걱정을 하는 사람은 자신뿐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걱정을 하는 사람도 데스페라도뿐이겠지. 무법지대의 악명 높은 무법자, 혹은 카르텔 사냥꾼, 악몽, 사신. 수많은 별명만큼 흉악한 자신들의 실력과 무자비함은 자신들이 조금도 걱정 받을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그래도 두 사람이 서로를 걱정하는 건, 두 사람이 연인이기 때문이겠지. 새삼스러웠지만, 분명 그게 전부였다.

 

‘뭐, 안 괜찮을 리가 없지만’

 

걱정은 하지만 심각하게 고민하지는 않는다. 그건 루엔이 누구보다도 그가 강하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부릴 수 있는 배짱이었다. 자신과는 반대편 입구로 들어갔을 그는 어디 쯤 왔을까. 아마 두 사람은 일 처리 속도가 비슷하니, 별 문제만 없다면 복도의 중간쯤에선 만날 수 있겠지. 가장 좋은 건, 그 중간에서 만나기 전에 원수 같은 간부를 찾아 저승으로 보내버리는 거지만.

이왕 잡는다면, 제 손으로 잡아버려야지.

얼굴도 모르는 간부를 생각하며, 루엔은 리볼버를 가볍게 돌렸다.

 

 

 

“뭐야,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였냐”

 

데스페라도는 이런저런 계획이 적힌 달력을 피 묻은 손으로 뒤적거렸다. 처음에는 그냥 카르텔 놈들의 정보나 빼내려고 찾아본 거였는데, 설마 오늘이 성탄절 하루 전날이었을 줄이야. 기념일에 연연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매일 비슷비슷한 날을 보내는 그들에게는 이런 특별한 날이라도 챙기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 녀석, 아마 모르고 있겠지?’

 

자신도 달력을 보고 알았는데 제 애인은 무슨 수로 알겠는가. 딱히 그녀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번 일에 빠지면 주변 상황은 신경 쓰지 않는 루엔을 떠올리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일정과 정보가 적힌 달력의 페이지를 찢어 챙긴 그는 시체로 가득한 방을 나왔다.

간부는 아직 찾지 못했지만, 쓸 만한 것을 챙겼으니 빈손이라곤 할 수 없겠지. 총알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탄창에 탄환을 채운 그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복도를 둘러보았다. 이미 다 도망친 걸까, 아니면 그녀 쪽에 인원이 몰려있던 걸까. 최대한 귀를 기울여 발자국 소리를 찾던 데스페라도는 저 멀리서 들리는 급한 발소리에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래도 쥐새끼가 도망치는 모양이군. 속삭이듯 중얼거린 그가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기 위해 발을 옮겼다. 제까짓 게 뛰어봐야 벼룩이지. 오만함이 아닌 당연한 자신감을 내비칠 때, 어디선가 뻐꾸기시계가 울었다.

뻐꾹.

아, 이런. 자정인가. 11시 조금 넘어서 들어온 데스페라도는 이제 더 이상 이브라는 말을 쓸 수 없게 된 성탄절에 어깨를 으쓱였다.

뻐꾹. 뻐꾹.

돌아가면 1시가 넘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걸어가는데 저 멀리서 익숙한 그림자가 보였다. 자신보다 작은 몸집. 긴 회색 코트를 휘날리며 걸어오는 것은 제 사랑스러운 애인

뻐꾹. 뻐꾹.

저쪽에서도 자신을 알아 본 걸까. 루엔은 느긋하게 걸어오다 말고 그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애도 아니고’ 아직 상황정리도 끝나지 않았는데. 그래도 그는 그녀를 위해 걷는 속도를 높여 주었다. 복도 가운데쯤에서, 마주칠 수 있도록. 조금씩, 조금씩, 빠르게.

뻐꾹. 뻐꾹. 뻐꾹.

뭐가 그리 즐거운 걸까. 제 연인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아니, 그냥 자신을 봐서 기분이 좋아진 걸까. 루엔을 보면 그저 웃음이 나오는, 그처럼 말이다.

뻐꾹. 뻐꾹.

와락. 장난스럽게 제 품으로 뛰어든 연인은.

뻐꾹.

마지막 뻐꾸기 울음소리가 울리기 전, 제게 입을 맞춰왔다.

뻐꾹.

 

“메리 크리스마스, 데스페라도”

 

아, 이미 알고 있었나. 데스페라도는 허탈하게 웃고 그녀의 이마에, 볼에, 입술에 키스를 되돌려줬다. 제가 먼저 말할 셈이었는데. 뭐, 먼저 듣는 쪽도 나쁘진 않으니 불만은 없었지만.

 

“메리 크리스마스, 루엔”

 

크리스마스 기분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두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도망치는 쥐새끼를 잡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떨어져서 각자 갈 길을 가버렸고, 건물에는 당분간 총성과 비명만이 크리스마스를 축하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