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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Dungeon & Fighter

드림 인외합작 / Last master



※ 데스페라도 드림, 오리주 주의. 인간X뱀파이어 AU

※ 합작 홈 주소 → http://moonmist.wixsite.com/notningen

 

 

 

Last master

written by Esoruen

 

 


탕. 총성과 함께 튄 피가 새까만 정장에 묻었다.

‘젠장’ 피가 묻은 소매를 신경질 적으로 턴 데스페라도는 머리에 총을 맞고 죽어가는 배신자를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봤다. 조직에서 자라, 조직을 위해 살아온 그는 비록 매일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삶이었어도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조직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뒷골목 어딘가에서 굶어 죽었을 텐데, 구차하게라도 살아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가.

 

“좋아, 그럼 돌아갈까”

 

배신자는 처리했다고 보고하고, 자신은 다음 일을 기다린다. 조직 최고의 히트맨인 자신의 일은 언제나 이런 것 뿐. 사람을 죽이는 일이 익숙하다고 하면 그것은 비극일까. 이제는 뭐든 알만한 어른이 되었지만, 데스페라도는 이런 질문엔 여전히 답하기가 힘들었다.

 

“어라”

 

이제는 아무도 없는 낡은 건물의 계단을 내려가던 그는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설마, 목격자가 있었던 걸까. 곤란한 상황인 것은 확실했지만, 당황하는 일은 없었다. 목격자가 있다면 죽이면 그만. 그것이 살인자로서 살아온 제 철칙이었으니까.

고개를 든 그의 눈동자에 비친 것은 새까만 원피스를 입은 여자였다. 나이는 이제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쯤 될까. 투명한 보라색 눈동자와 새하얀 피부가 매력적인 목격자는 계단을 내려와, 데스페라도의 앞까지 성큼성큼 걸어왔다.

 

“미스터는 어디서 왔어? 혹시 저 방안의 남자를 죽인 건 당신?”

 

대답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죽여야 할 상대에게 친절하게 대해줄 필요가 있던가. 말없이 권총을 꺼낸 그는 곧바로 상대의 머리를 향해 총을 쐈지만, 상대는 피를 뿜지도, 쓰러지지도 않았다.

 

“?!”

 

인간의 속도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움직임으로 사라진 여자는, 어느새 제 등 뒤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어머, 터프해라’ 귓가에 닿는 목소리는 너무나도 달콤해서, 수많은 여자를 대해 와 여자라는 생물 자체에 질려있던 데스페라도조차도 소름이 돋고 말았다.

이 여자, 정체가 뭐란 말인가.

본능적인 공포. 총구를 등 뒤로 돌리려던 그는 제 목에 박히는 날카로운 고통에 얼어버리고 말았다. 무언가가 제 목을 찔렀다. 아주 날카롭고 작은, 무언가가.

‘잘 먹겠습니다’

여자는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데스페라도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빈혈이 온 것 마냥, 아찔한 현기증. 정체를 알 수 없는 두통과 함께 쓰러진 그는 마지막 기억으로 여자의 붉은 미소를 보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뜬 데스페라도는 먼지와 피의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분명 자신은, 일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에 낮선 여자와 만나서…

 

“어머, 정신이 들었어? 미스터”

 

그래. 저 목소리. 그는 분명 제가 정신을 잃기 전 들었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새까만 원피스와, 붉은 입술과, 흰 피부가 인상적이던. 그 여자를.

데스페라도는 창가 옆에서 자신을 향해 미소 짓고 있는 여자를 발견하고 무심코 제 목을 더듬었다. 아까 분명, 저 여자는 제 목을 공격했었지. 일단 살아있는 걸 보면 치명상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너, 정체가 뭐야”

“그렇게 노려보지 마. 무섭게”

 

제 드레스마냥 새까만 생머리를 만지작거리는 그녀는 데스페라도가 무섭지도 않은지 계속 웃고 있었다. 딱히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 것 같지도, 완력이 세보이지도 않는데. 무슨 수로 자신을 공격한 걸까. 그는 목에서 낮선 상처를 발견하고 더듬던 손을 멈추었다. 마치 송곳으로 목을 쑤신 것처럼, 나란히 뚫린 두 개의 상처.

 

“내 이름은 에소루엔 로시스. 뭐, 미스터가 궁금해 하는 건 그게 아닌 것 같지만?”

“알면 당장 대답하지 그래? 누구의 사주지? 내게 무슨 짓을 한 거고?”

“어머, 사주라니. 난 나 외의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아. 동족들은 못 본지 오래 되었고”

 

동족? 알 수 없는 말만 들어놓는 것이 썩 기분 나쁘다. 데스페라도는 제게 다가오는 여자가 점점 무서워져 입을 꾹 다물었다. 총은 어디 간 걸까, 아니, 어차피 이 여자에게 총은 소용없겠지만 그래도 아무 무기도 없이 낮선 곳에 있는 건 진정할 수가 없었다.

 

“미스터, 이름은?”

“그건 왜?”

“이제 나랑 같이 다녀야 할 텐데, 계속 미스터라고 부르면 별로잖아?”

“내가 왜 너랑 같이 다녀야하지?”

“그거야, 당신은 내 종이니까”

 

이건 또 무슨 말이지. 하나하나 이해 할 수 없는 소리뿐이라 제 쪽이 머리가 이상한 건지, 저 쪽이 머리가 이상한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종? 내가? 너의?”

“그래. 나, 솔직히 당신이 마음에 들었거든! 죽이기엔 아까워서 살려둔 거니 감사해도 좋아”

“하, 망상이 심한 아가씨군”

“망상으로 보여?”

 

어느새 제 코앞까지 다가온 여자는 상처투성이 두 손을 제 목에 감싸 쥐게 했다. 힘을 주면, 그대로 목을 졸라버릴 수 있는 자세. 그는 자신의 손 위치보다, 제 손목을 잡고 있는 새하얀 손에 온도에 놀라고 말았다. 마치 시체같이 차가운 그 손은 열 손톱이 모두 검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목, 졸라볼래?”

“뭐?”

“시도라도 해 봐. 아까는 나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렇지. 목격자니까, 죽이려고 했지. 데스페라도는 정신을 차리고 제 손에 있는 힘껏 힘을 주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일일까, 온 힘을 다해 목을 조르려고 해도 제 손은 도저히 말을 듣지 않았고, 두 손은 겨우 그 가느다란 목을 감싸고 있는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거 봐’ 속삭이며 웃는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빛났다.

 

“당신은 내 종이니까, 날 죽일 수 없는 거야. 이미 피로 각인이 된 상태니까”

“너… 정체가 뭐야?”

“글쎄다? 뭐라고 해야 좋을까”

 

확실한 건, 이 여자는 아마 인간이 아닐 것이다. 무슨 판타지 소설 같은 소리를 하고 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제게 일어난 모든 일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라서 그렇게 단언 할 수 있었다.

자, 그렇다면 이 아가씨가 인간이 아니면 뭘까. 몇 가지 이름이 떠오르는 가운데, 여자는 자신의 정체를 시 마냥 읊어 내려갔다.

 

“누군가는 우리를 어둠의 일족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병에 걸린 존재들이라고 부르지. 하지만 뭐, 가장 널리 알려진 이름은 흡혈귀, 뱀파이어이려나?”

“하, 그럼. 설마 날 물었다던가?”

“뭘 새삼스럽게. 목에 상처를 확인하고 나서도 그러는 거야?”

 

그래. 확실히 이 구멍은 송곳니 자국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빨리 움직인 것도, 인간이 아니기에 가능했던 거겠지. 새하얀 피부도, 사람을 제압하는 것 같은 달콤한 목소리도. 전부 다, 신화속의 흡혈귀의 특징과 맞아떨어졌다.

 

“…설마, 십자가랑 마늘도 무서워하나?”

“아니. 미안한데 그건 그냥 사람들의 허구일 뿐이야. 기대했어?”

“기대하기는. 그냥 물어본 것뿐이야. 그러니까… 이름이 뭐였지?”

“에소루엔 로시스. 뭐, 부르기 힘들다면 루엔이라고 불러도 돼. 예전에 나와 함께 지낸 일족들은, 날 그렇게 불렀거든”

 

저 일족이라는 것은 아마도 같은 뱀파이어들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지. 이제야 조금씩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 데스페라도는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다가갔다.

창 밖에는 상현달과 낮선 건물들이 보였다. 이곳은 어디일까.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여긴 제가 마지막으로 기절한, 배신자를 처리하러 간 그 건물과는 멀리 떨어진 곳일 거라는 정도뿐이었다. 설마 저 여자, 그러니까, 루엔이라고 하던가. 그녀 혼자서 자신을 이곳까지 옮긴 걸까. 보통의 인간 여자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녀가 뱀파이어라면 무리도 아니겠지.

 

“여긴?”

“으음, 내 거처. 지금은 아무도 안 살지만, 50년 전까진 내 종이 살았었지”

“나랑 만난 그 곳에서는 얼마나 떨어진 곳이지?”

“별로 떨어져있지 않아. 겨우 옆 나라일 뿐인 걸?”

“……”

 

참으로 스케일이 큰 여자군. 데스페라도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아까 그 남자와는 무슨 관계인거지?”

“응? 그 남자? 아아, 당신이 죽인?”

“데스페라도. 그렇게 불러. 조직에서 내게 준 이름이야”

“조직? 무슨 조직?”

“내가 속한 조직. 뭐, 쉽게 이야기 하자면 갱단이라고 보면 돼. 나는 거기서 어렸을 때부터 일해 왔지. 사람을 죽이는 일을”

 

좋든 싫든 제 주인이 된 이상, 이정도 과거사는 이야기해도 나쁘지 않겠지. 그는 제가 이제까지 살아온 대강의 방식을 제 주인에게 이야기 해줬다. 어릴 적부터 갈 곳이 없었던 자신은 갱단에 들어와 히트맨이 되었고, 유능한 사격실력과 살인능력을 인정받아 지금까지 갱단에 머무르며 온갖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을.

 

“참고로, 내가 죽인 그 남자는 우리 조직의 배신자다. 내 일은 그 놈을 죽이고 돌아가는 거였지”

“헤에, 도망치던 중이었구나. 그 남자. 어쩐지 속이기 쉽다 했었어. 내가 조금만 유혹해도 넘어오더라고”

 

아니, 그건 굳이 도망자가 아니어도 넘어 올 것 같은데. 데스페라도는 아무리 봐도 비현실적인 그녀의 아름다움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것도 역시, 뱀파이어로서 특성일까. 단순히 외모가 아름답다고 하기보단, 마치 기묘한 페로몬이라도 풍기는 것 같은 생명체. 제 종이 자신을 보는 시선을 알긴 아는 걸까, 루엔은 배신자의 일에 대해 재잘재잘 떠들었다.

 

“솔직히, 죽여도 상관은 없었어. 그 남자는 그냥 내 하룻밤 식사였거든. 피를 다 빨아 죽일 생각이었으니 죽이는 건 문제가 아니었어. 단지 당신이 왜 죽였는지, 그게 궁금했을 뿐이야. 인간들의 사정은 언제나 재밌거든”

“그래?”

“응 그래. 뭐, 당신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는데… 솔직히 이런 미남에, 배짱까지 있는 남자는 죽이기엔 아깝잖아? 그래서 맛만 보고 살려준 거야. 나의 종으로 만들기 위해”

“그거 고맙군”

 

뭐든 죽는 것 보다는 사는 게 나은 법이지. 그것이 데스페라도의 철칙이었다. 뭐, 살아남은 이유가 어째 좀 찝찝한 것은 마음에 걸렸지만… 잘생긴 것도 재력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럼 조직에 돌아가야겠네?”

“뭐, 그렇긴 하다만… 이제 네 종이라며? 가도 되는 건가?”

“상관없어. 나도 따라갈 거거든!”

“뭐?”

“왜? 그냥 데리고 다니면 되잖아. 조수든 애인이든 좋을 대로 변명하고. 해가 떠있을 때는 밖에 못 다니지만, 뭐~ 어차피 밤에 움직일 거 아냐, 그런 불법 조직은”

 

분명 인간도 아닐 텐데, 어떻게 저렇게 잘 아는 걸까. 애초에 뱀파이어는 사람과는 수명자체가 다르니, 아는 게 더 많을 수도 있겠지만…

 

“너, 몇 살이야?”

“숙녀의 나이를 묻다니, 실례잖아?”

“숙녀는 무슨. 그래서 몇 년이나 살았나, 주인님?”

“흐음, 300살 이후로는 세어본 적이 없어서”

 

과연 상상 그 이상이군. 황당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반응은 익숙한 걸까, 그다지 기분 나빠 보이지 않는 루엔은 제가 남긴 상처가 남은 목을 검지로 쓸어 올렸다. 소름이 돋는 것은 차가운 손가락의 체온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의 손길이 너무나도 기분 좋아 뿌리칠 수 없어서 그런 걸까.

 

“그럼, 갈까? 어차피 옆 나라라고 해도 국경이야. 이 밤이 끝나기 전까진 갈 수 있어”

“하”

 

재미있는 여자다. 그래도 제 주인인데 이런 건방진 생각을 해도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데스페라도는 그녀가 퍽 흥미로웠다. 자신과는 생각하는 것부터 다르고, 살아온 세월이 아득히 다르니, 신기하다고 느끼는 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신기함이 흥미로 이어진 것은, 기적이라고 할 만한 일이었다.

 

“잘 부탁하지, 루엔”

“뭘. 이쪽이야 말로 잘 부탁해 데스페라도. 나를 재밌게 해줘”

 

인간들의 삶은 그 무엇보다 재밌거든.

어린아이마냥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보라색 눈동자가 달빛을 받아 빛났다. 아주 잠깐, 그 보라색 눈동자가 붉은 빛으로 보인 건 달빛의 장난일까. 눈을 느리게 깜빡인 데스페라도는 제 주인의 눈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 투명한 눈동자 속, 반짝거리는 것은 무궁무진한 호기심. 제가 그녀에게 흥미를 느끼는 것처럼, 그녀도 자신에게 흥미를 느끼는 걸까.

어찌 되든, 재미있는 주종관계가 될 것 같다. 시꺼먼 사내자식도 아니고, 이런 아가씨라면 모시는 맛도 있겠지.

 

“살려준 값은 할 테니, 걱정마라고. 주인님”

 

장난스럽게 그녀의 손에 입 맞춘 그는 미소 짓는 입술 사이로 보이는 송곳니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제 목을 물어뜯은 무기, 그리고 앞으로도, 제 피를 가져갈 흉기.

분명 무서워야 하는 것에,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어째서일까.

자신을 올려다보는 청록색 눈동자에서 모든 감정을 읽은 루엔은, 제 새로운 종의 이마에 답례의 키스를 전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