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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Dungeon & Fighter

월간 드림 7월호 / 빛바랜 사진 속



※ 데스페라도 드림. 오리주 주의. 2세 등장.




빛바랜 사진 속

written by Esoruen




아빠, 이거 엄마랑 아빠야?”

 

저녁을 막 먹기 전 딸이 내게 내민 것은 언제 찍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 된 사진이었다. . 이걸 어디서 찾은 걸까. 온 집안을 다 뒤져도 안 나올 것 같은데. 나는 읽던 신문을 접어두고 딸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래.”

정말? 엄청 젊을 때네! 나 태어나기 전이지?”

네 엄마가 스물 조금 넘었을 때니, 당연히 넌 없었지.”

 

우와!’ 딸은 엄청난 물건이라도 발견한 사람마냥 기뻐했다. , 따지고 보면 엄청난 물건이긴 할까. 언제나 나와 루엔의 옛날 일을 궁금해 한 딸이니, 저 사진은 단순한 낡은 사진이 아닐 테니까.

자식이 부모의 젊은 시절을 궁금해 하는 건 특별히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건 잘 알고 있었다. 나야 내 부모에 대해선 깊게 생각해 본적이 없어 공감이 잘 안되지만, 루엔이나 주변의 다른 녀석들은 그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말해줬으니까. 무엇보다, 나랑 루엔의 젊은 시절이라면 굳이 내 자식뿐만이 아니라 다른 어린 것들도 궁금해 할 만 하니 놀라울 것도 없지. 그러니 나는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는 딸에게, 불쾌한 기색 없이 기꺼이 옛날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다.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아마 막 겐트에 가서 황도군이랑 같이 카르텔 소탕 할 때쯤이었나. 그때 쯤 찍은 것 같네. 배경 보니 여기는 아니니까.”

그럼 제너럴 삼촌도 만난 후겠네?”

그래.”

 

이왕이면 저 이름은 안 듣고 싶은데. 아주 자기 엄마랑 이상한 것만 닮아가지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말았지만 그래도 대답은 평범하게 잘 해줬으니 됐겠지. 나는 방문 밖으로 보이는, 아들과 함께 식기를 꺼내고 있는 루엔을 힐끔 본 후 다시 딸을 보았다. 역시 내 딸은 외모만큼은 확실히 나랑 루엔을 반반 섞어놓은 것 같지만, 표정이나 말투는 확실히 루엔을 빼다 박았다. 그리고 성격도, 확실히 나보단 애 엄마를 닮았고.

 

근데 왜 제너럴 삼촌은 없고 둘이서만 찍었어?”

그 새, 아니, 그 인간 이야기는 그만 하고. 아이린, 이건 어디서 주웠어?”

주운 거 아냐. 옷 좀 찾는다고 옷장 뒤지다가 나온 거니까!”

그건 주운거지. 흐음. 옷장에서 말이지.”

 

옷장에서 주웠다면 아마 옛날에 입던 옷에서 흘러나온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진 같은 건 가지고 다니지 않았고, 아이린이 뒤진 옷장이라면 나보다는 루엔의 옷을 찾으려고 뒤진 걸 테니, 역시 루엔의 코트에서 나온 거려나.

 

으음.”

왜 그래, 아빠?”

아니. 그냥.”

 

사진 같은 건 잘 찍질 않아서 남아있는 것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우연히 한 장 생기니 뭐가 이리 기쁜 걸까. 나이를 먹으면 별게 다 그리워진다더니, 베릭트 영감의 말은 대부분 늙은이의 오지랖이라 생각했는데 이거 하나 만큼은 맞는 말인 거 같았다.

 

엄마 말은 대부분 오버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네.”

뭐가?”

아니. 엄마가 늘 지금 너희 아버지도 잘생겼지만 젊을 땐 더 장난 아니었다.’라고 했으니까. 난 엄마가 콩깍지가 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사진보고 솔직히 놀랐거든! , 물론 아빠는 원래 잘생겼긴 하지만 엄마가 워낙 오버해야 말이지.”

너희 엄마는 그런 점이 귀여운 거니까.”

 

우와, 닭살!’ 딸은 정말로 질색하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아마 저 뒤론 정말 우리 엄마랑 아빠는 딸 앞에서 이러고 싶어?’ 라던가 마이스터 삼촌이 질색하는 거 좀 알거 같아!’ 같은 소릴 하겠지. 뻔한 패턴이었다.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예측은 쉬웠다.

 

아이린! 잠깐 이리 와서 이것 좀 식탁에 놔줄래?”

? , 잠깐만 엄마!”

 

하지만 딸은 내가 예상한 반응을 보여주기도 전, 루엔의 부름에 자리를 뜨고 말았다. 물론, 사진은 내게 넘겨준 채로 말이다.

 

흐음.”

 

집 안에서 한 대 피우면 꼭 나중에 잔소리를 듣지만, 지금은 담배가 필요하다. 저녁이 다 차려지기 전에 끄면 루엔도 크게 뭐라고 하진 않겠지. 얼른 피우고 꺼버릴 생각으로 담배를 문 나는 빛바랜 사진 속에 웃고 있는 루엔과 눈을 맞추었다.

이땐 나도 이 녀석도 터무니없이 젊었지. 지금도 굳이 따지자면 그리 늙은 나이는 아니지만, 저 시절처럼 적게 자고 몸을 막 굴릴 수 있는 나이는 아니다. 자식들도 벌써 딸이 10살에 아들이 7살이니,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지.

 

이 때가 좋았나?’

 

싫을 건 없었지. 살기는 지금보다 더 힘들었을지 몰라도, 이 시절의 우리는 새까만 밤에도 빛이 날 것처럼 반짝거렸고, 뜨겁게 타올랐고, 생기 넘쳤으니까. 루엔도 나도, 무서울 것이 없고 잃을 것도 서로밖에 없던 시절. 어디까지고 갈 수 있고, 또 어디로든 돌아갈 수 있었는데.

 

아빠.”

 

생각에 잠긴 나를 부른 건 아들 라이엇이었다. 담배 연기가 괴롭지도 않은 걸까.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는 아들은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지만, 시선은 내가 들고 있는 사진에 꽂혀있었다.

 

엄마가 밥 먹으러 오래요.”

, 그래. 빨리도 준비했네.”

 

처음엔 나도 도와줄까 했지만 나갔다 와서 피곤할 텐데 오늘은 쉬어 라고 말해서 앉아있었던 건데. 아무래도 오늘은 처음부터 저녁을 간단하게 차릴 생각이었나 보다. , 어쩌면 평소와 같은 식탁이지만, 자식 둘이 도와 빨리 처리한 걸지도 모르지만.

 

신경 쓰여?”

?”

이 사진. 계속 보고 있잖아?”

 

아들은 거짓말을 못 한다. 도대체 누굴 닮아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라이엇은 언제나 솔직하고 정직했으니까. 내 질문에 조금 망설이며 고개를 끄덕인 아들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슬쩍 말을 이었다.

 

엄마랑 아빠죠?”

, 보다시피.”

오래 된 사진이네요.”

그렇지. 너희를 낳기 전이니까. 너희 누나가 찾아왔다만 정확하게 몇 년 전인지는 나도 몰라.”

 

분명 제 누나처럼 궁금한 게 많을 텐데, 라이엇은 내 말을 듣고 있을 뿐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구나.’ 라고 말하는 것 같은 얼굴로, 몇 십 년 전의 나와 루엔을 계속 바라볼 뿐.

아들은 한참동안 침묵을 지키다 슬쩍 말을 돌렸다.

 

, 엄마가 기다려요. 빨리.”

그래. 그래.”

담배, 지금 안 끄면 엄마가 혼낼 거예요.”

알아.”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어이가 없으면서도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 어쩌면 내가 혼나는 것 보다 화난 어머니를 보는 게 무서운 걸지도 모르지만, 그것 또한 이해 못할 건 없었다. 애들 입장에선 부모가 화내는 것이, 이유가 자신과 관계없는 것이라 해도 무섭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

 

먼저 가서 앉아있어. 금방 갈 테니까.”

.”

 

적어도 담배냄새는 조금 지우고 가야 욕을 덜 먹는다. 완전히 지우는 건 불가능 하더라도, 최소한 덜 나게는 해야 식탁 앞에 앉을 면목이 생기지 않겠는가. 라이엇이 나가자마자 담뱃불을 끈 나는 창문을 열었다. 밖은 벌써 해가 져서, 불어오는 바람이 퍽 싸늘하게 느껴졌다.

 

데스페라도, 밥 먹으라니까? 왜 라이엇만. 뭐야, 한 대 피웠어? 담배는 나가서 피우라고 했잖아.”

.”

 

일부러 늦게 나가려고 한 건데. 라이엇이 나간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를 못 참고 온 거야.

뭐라 변명 할 것도 없는 나는 루엔이 내 바로 옆으로 다가올 때 까지 표정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약간은 짜증이 난 것 같았지만, 다행이 화가 난 건 아닌 것 같았다.

어차피 내 얼굴만 보면 내려던 화도 삼키는 너니까, 별로 걱정 할 필요도 없긴 하지만 말이다.

 

, 그거 뭐야?”

. 이거. 아이린이 찾아왔어. .”

, 이게 언제 적이야!?”

 

나에게 잔소리 하려던 것도 잊어버린 루엔은 사진을 가져가더니 어린 애처럼 깔깔 웃었다. 역시 나이만 먹었을 뿐이지, 내용물은 저기 저 사진을 찍었을 때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조금 더 어른스럽고, 차분해지긴 했지만, 본질이라는 게 어디 쉽게 달라지는 것이던가.

 

어쩐지 그립네~. 나름대로 재미있었는데. 이 때는 떠돌아다니면서 자유롭게 살았으니.”

되돌아가고 싶어?”

?”

돌아가고 싶으냐고. 이때로.”

 

내 질문에 너는 진지한 얼굴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냥 던진 질문인데 저렇게 심각해 질 필요가 있나. 물론 내가 저런 질문을 들었어도 조금 고민하긴 했을 것 같지만, 저 정도는 아닐 것이다. 난 이미 정해놓은 답이 있으니까. 길게 고민 할 필요가 없었지.

 

좋긴 좋았지만, 역시 돌아가고 싶진 않으려나.”

그래?”

. 지금도 좋으니까. 원래 지나간 세월은 지나가서 예쁜 거라고 생각하거든. 이렇게 빛바랜 사진으로 남았을 때가, 제일 아름다운 거라고.”

 

제법 시적인 생각이다. 나도 같은 의견이긴 하지만, 저런 생각을 하진 않았는데 말이다.

 

데스페라도는 돌아가고 싶어?”

아니.”

헤에. 그렇구나. ?”

 

역시 이유를 물을 줄 알았다. 아이린의 그 방대한 호기심이, 다 누구에게서 왔는데.

머릿속으로 이미 결론을 낸 내게 이유를 말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딱히 숨길 이유도 없었고, 오히려 말해주고 싶었으니까. 나는 루엔과 눈을 맞추고, 그녀가 그토록 바란 이유를 알려주었다.

 

저 때가 좋긴 했어도, 돌아가면 지금의 네가 그리울 것 같거든. 너 뿐만이 아니라 애들도.”

"……."

 

내 대답을 예상하지 못한 걸까. 루엔은 조금은 놀란 얼굴로 날 보더니 금방 두 뺨이 붉어졌다. 같이 산 세월이 몇인데 아직도 저런 말에 부끄러워하는 걸까. 하여간,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귀엽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여자다.

 

지금 감동했지?”

알면 밥이나 먹으러 나와.”

 

그래도 이젠 부끄럽다고 날 쳐버리진 않아 참 다행이다. 옛날 같았으면, 별 소릴 다 한다면서 등짝을 쳤을텐데.

헛기침을 하며 물러서는 루엔을 보며 웃음을 삼킨 나는 창문을 닫고 그 뒤를 따라나섰다.

빛바랜 사진은, 어느새 원래 주인의 주머니 속으로 돌아간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