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 드림 8월호 참여작
※ 제너럴 드림. 오리주 주의.
사계절이 너였다
written by Esoruen
젤바의 하늘은 언제나 같은 색이었다. 완전한 검은색도 아니고, 그렇다고 보라색이나 남색 같은 색을 갖다 붙일 수도 없는 거무죽죽한 빛깔. 죽은 안톤의 등에서 계속 뿜어져 나오는 연기로 더러워진 대기는 때로는 붉게, 때로는 잿빛으로 변했지만, 그 변화의 폭은 좁디좁았다.
“슬슬 날이 추워지네요, 겨울이 다가오는 걸까요?”
도대체 언제부터 자신들이 사이좋게 이야기 할 사이였다고 말을 걸어오는 건지 모르겠다. 블랙로즈 단원들과 함께 황녀에게 연락을 취하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던 제너럴은 자신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목소리에 그답지 않게 인상을 찌푸릴 뻔 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유르겐 공.”
“좋은 아침이군요. 제너럴. 아침부터 바빠 보이시는데, 잠깐 시간 있습니까?”
자신들이 뭘 하고 있는지 이미 눈치를 챈 걸까. 유르겐은 힐끔힐끔 블랙로즈 단원들을 보며 제너럴에게 물었다. ‘나와 할 이야기 같은 건 없을 텐데.’ 딱히 그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최근 겐트와의 연락이 자꾸만 두절되는 원인으로 유르겐이 지목되는 이상 제너럴은 도무지 그를 좋게 볼 수 없었다.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은 황도군의 일원이었고, 황녀의 병사였으니까. 황녀와 그 측근들에게 틈틈이 이를 드러내는 귀족을 반길 리가 없었지.
“…잠깐이라면 괜찮습니다.”
“그렇습니까? 잘 되었군요. 같이 주변이라도 걸을까요?”
“좋습니다. 부하에게 말하고 올 테니 기다려 주시지요.”
“알겠습니다. 말도 없이 대장이 사라지면 큰일이니까요.”
유르겐의 말은 단순히 자신의 행동을 이해한다는 의미로 말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대장이 사라지면 큰일’이라. 참으로 당연한 소리지만, 이렇게 까지 거슬리게 들리는 건 다 상대의 행실 때문일 것이다.
“로잔나. 파이오니어 씨에게 가서 자료를.”
“네, 알겠습니다. 제너럴.”
최대한 소리죽여 명령한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유르겐을 따라나섰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 건지 막사 밖은 조용했고, 특별히 오가는 사람도 없어보였다. 저 멀리, 모험가 길드 쪽의 텐트는 시끄러운 것 같기도 했지만 그건 제국과 함께 행동하는 자신들과는 크게 관계없는 일이었다.
“소식 들으셨습니까? 마계로 갔던 인원들이 도망친 루크를 쫒아 죽은 자의 성으로 돌입하기 위해 다시 천계로 돌아온다고 하더군요.”
“네. 언제 돌아올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귀환하면 이번에야 말로 루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대화의 시작은 평범했다. 자신들이 여기에 있는 이유. 사도 루크와 그를 물리치기 위해 마계로 간 병력의 이야기. 이런 이야기라면 놀랍지 않지만, 아마 유르겐이 정말로 따로 말하고 싶은 주제는 이게 아닐 것이다.
“제국의 황녀님이 마계에서 힘내주셨다고 하더군요, 아 물론 무법지대의 그 두 사람도 말입니다.”
“이름정도는 외우시는 게 어떻습니까? 아무리 무법지대 사람이라도, 카르텔 토벌 때 제일 큰 힘이 되어준 사람들입니다.”
“하하. 이름이야 당연히 알지요. 그냥 간단히 지칭한 것뿐입니다.”
회의 중일 때는 몰라도 평소 사담을 나눌 땐 이렇게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진 않는 제너럴이었는데. 역시 ‘그녀’에 관련된 일이면 그냥 넘어가지는 못하는 걸까. 유르겐은 냉정하게 말을 받아치는 그에게 무시할 의도는 아니었다는 듯 변명하고 하려던 말을 이어갔다.
“어쨌든, 이번에야 말로 황도에 평화가 찾아올 겁니다. 사도가 사라진 후에도 할 일은 많겠지만 적어도 이 땅에 가해질 외부의 위협 같은 건 없겠지요.”
“외부에서 위협이 없다고 꼭 안전해 지는 건 아니지만 말이죠.”
“물론입니다. 치안에도 각별히 신경 써야죠. 전란 후에는 늘 어수선해지니까요.”
제너럴이 말하는 게 치안의 이야기가 아닌 건 아마 유르겐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저 모른 척 하고 싶거나, 제게 가해지는 의심은 당치도 않다는 뜻의 발언이겠지. 헛기침을 하며 이야기의 흐름을 잠깐 끊은 그는 상대의 눈치를 보는 건지 한동안 말이 없다가, 근처를 한 바퀴 다 돌아갈 때 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그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데.”
“네?”
“데스페라도와 로시스 양 말입니다.”
아까 그건 변명인 줄 알았는데, 정말 이름을 외우고 있긴 했구나. 제너럴은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유르겐이 말을 마저 이어가도록 입을 다물어 주었다.
“이대로 무법지대로 돌아갈 거라고 하던가요?”
“그건 제가 아니라 당사자들에게 묻는 편이 좋아 보이는데요.”
“당신이라면 알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친하지 않습니까? 특히 로시스 양과.”
아. 그는 적어도 이걸 물을 거였다면 맨 마지막 문장은 말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최대한 표정관리를 하며 이야기를 듣던 제너럴은 유르겐이 굳이 루엔을 집어서 말하자 더 이상은 참지 않겠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의도로 부른 겁니까?”
“그렇게 기분 나빠 할 이유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용건이나 말하시지요.”
‘그렇게 좋아하는 게 신기할 지경이군.’ 유르겐은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 제너럴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겨우 계집 하나. 잘 봐줘도 유능한 전투원일 뿐인데. 그는 왜 그렇게 에소루엔 로시스라는 여자를 좋아하는 걸까. 심지어 그 호의는 집착이나 육체적인 관심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제 것이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식거나 사라지지 않을, 지고지순한 애정. 제너럴의 호감은 정말로 그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었지. 자세한 사정은 하나도 모르는 유르겐이었지만, 그는 제너럴이 루엔을 볼 때마다 두 눈 가득 다정함이 흘러넘치던 것을 잊을 수 없었다.
“만약 남지 않겠다고 하면 설득해 줄 수 있을까 해서 말입니다. 남는다면 상관없습니다만.”
“제가 설득할 권리는 없습니다. 설득한다고 들을 두 사람도 아니지만요.”
“그렇습니까. 그럼 됐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혀 감사하지 않다는 얼굴로 예의상 인사한 유르겐은 먼저 발걸음을 돌려 제가 머무르는 막사로 가버렸다. ‘하아.’ 땅이 꺼져라 한숨 쉰 그는 입에서 나온 숨이 새하얗게 변하는 걸 보곤 아까 전 들은 인사말을 떠올렸다.
그래. 슬슬 겨울인가. 늘 매연으로 가득한 하늘과 흙빛뿐인 환경이라 시간의 흐름도 인지하지 못했지만, 주둔한 기간을 생각하면 슬슬 초겨울에 접어들었을 시기였다. 아마 유르겐이 말하지 않았다면, 자신은 분명 전혀 눈치 채지 못했을 테지만.
젤바는 원래 존재하던 섬이 아닌 안톤의 시체로 만들어진 땅이었다. 당연하지만, 나무도 풀도 존재하지 않았고 있는 거라곤 원래 안톤의 등에 있었던 커다란 화산뿐이었지. 이런 곳에선 계절감은 물론이고 시간감각도 느끼기 쉽지 않았다.
지금 쯤 겐트엔 첫눈이 내렸을까. 아직 복구되지 않은 곳도 많은데, 너무 많은 눈이 내리면 제설작업이 힘들어지진 않을까. 뒤늦게 이 계절에 맞는 걱정들을 하며 원래 제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던 그는 저 멀리 제국군 쪽 막사가 시끄러운 걸 보고 멈춰 섰다.
무슨 일 있나. 걱정되어 살펴보려던 그와 눈이 마주친 사람은 제국의 황녀 이자벨라였다.
“…어?”
왜 그녀가 여기에, 라고 생각할 때.
“제너럴!”
뒤에서 다가온 목소리의 주인이, 차가운 공기를 두른 팔로 제 목을 끌어안았다.
혹시 이건 꿈인가. 제너럴은 제 어깨에 걸쳐진 팔을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돌아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게 오늘이라는 말은 한 마디도 듣지 못했는데.
“엔?”
혹시나 싶어 이름을 불러보자, ‘네?’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역시 꿈이 아니다. 제너럴은 당장 뒤돌아보지도 못하고 한참동안 숨을 고르다가, 더 이상 나올 따뜻한 숨도 없게 된 후에야 겨우 몸을 돌려 상대의 얼굴을 확인했다.
오랜만에 본 루엔의 얼굴은 조금도 달라져있지 않았다. 상처가 난 곳도, 흉터가 난 곳도 없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는 비록 직접 가보진 못했지만 마계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서면으로 읽어 알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저 왔어요, 제너럴.”
눈을 마주하고 제대로 인사한 그녀는 다시 한 번 제너럴의 목을 끌어안았다. 아. 그는 루엔의 몸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토록 실감나지 않던 겨울이, 모두 그녀의 품에 있었다. 아침바람에 차가워진 코트와, 체온이 닿지 않아 서늘한 긴 생머리와, 금속 특유의 냉기를 내뿜는 허리춤의 리볼버까지.
겨울을 몰고 돌아온 것 같은 그녀를 온 몸으로 받아들인 제너럴은, 목이 메여오는 것을 숨기려는 듯 얼음장같이 차가운 몸을 끌어안고 겨우 대답을 쥐어짜냈다.
“어서 오세요. 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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