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D/封神演義

남량특집 무서운 드림 합작 / 毒


※ 신공표 드림, 오리주 주의.

※ 작품 후반부의 중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 봉신연의 외전에 등장하는 인물의 언급과 묘사가 있습니다.

※ 상대방을 통제하기 위한 폭력과 집착이 작품 전체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 합작 홈 주소 → http://scarydreamcollabo.creatorlink.net/




written by Esoruen




오랜만입니다, 복희. 아니, 태공망이라고 부르는 편이 좋을까요? 뭐 당신이라면 어느 쪽도 신경 쓰지 않을 테지요. 그러니 저도 편하게 부르겠습니다.

어떻게 당신이 여기 있는지 알았냐고요? 글쎄요. 지금 당신은 그것보다 다른 게 더 궁금한 것 같은데, 아닙니까? 속이려 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다지 속이려는 의지도 없어 보이지만…, 그렇게 까지 백액호를 꽉 쥐고 있으면 보는 제가 다 아파보이지 않습니까? 놓고 이야기 하죠, 놓고. 어차피 그녀는 어디에도 가지 않아요. 그녀가 제 옆 외에 갈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변했다? 무엇이? 아아, 그녀 말입니까? 아니죠.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입니다. 이건 변한 게 아니라 돌아왔다고 해야 맞는 겁니다. 당신도 이런 모습의 백액호가 더 익숙하지 않습니까? 덩치만 큰 아이 같지만 통찰력은 있고, 잠시도 가만히 못 있는 성미를 가졌으면서 제 말은 잘 듣는. 원래 그런 성격이었지 않습니까, 그녀는.


…그렇군요. 뭐, 당신의 입장에서는 이 회귀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어찌되었든 당신에게 백액호는 동포가 만든 소중한 피조물이지 않습니까? 당신 자신에게 얼마나 큰 의미로 다가올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조카를 보는 백부 정도의 감상은 될 거 같다 짐작할 수 있군요. 실제로 피는 이어져있지 않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말입니다. 


하지만 전 아닙니다. 저에게 백액호는 봉신계획의 주요 부품이기 이전에 소중한 반려도사란 말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저도 그녀를 필요하기 때문에 데리고 다녔으니, 뭐라 할 처지가 아니라 하면 반박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역사의 도표가 사라지고 난 후에도 제가 굳이 그녀를 데리고 다니는 건 그 이상의 감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이걸 부정할 수는 없어요. 태공망. 나는 내 미학에 맞는 사람을 놓치는 바보가 아닙니다. 생에 처음으로 만든 라이벌인 당신이 있는 곳쯤은 금방 찾아내는 근성을 보면 알겠지만, 저에게 백액호는 소중한 반려인 만큼 변해버린 그녀를 가만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건 사랑이 아니다.’ 라고 하셨습니까? 아하. 무슨 오해를 하는 지 알 것 같군요. 당신, 지금 제가 백액호의 성격이 확 변해버려서 이런 일을 벌인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절 뭐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저는 그녀가 어떤 성격이든 상관없습니다. 말을 좀 안 들어도, 더없이 세속적이어도 백액호는 백액호인걸요. 제가 정말 참을 수 없는 건…, 돌아온 기억과 함께 찾아온 낯선 이의 그림자. 그 자체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백액호가 되찾은 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닙니다. 또 다른 시조…, 신농과 함께 생활하던 시기의 모든 것이 지금의 그녀에게 덮어씌워졌죠. 말투에, 행동에, 취향까지. 크고 작은 것들이 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저를 좋아하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내다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원래 그녀가 가진 인격의 요소가 모두 저와 생활하며 만들어 진 것처럼, 돌아온 인격의 모든 것에는 그의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마치, 다른 남자를 하나 더 곁에 데리고 사는 것 같은 기분이더군요.


솔직히 그런 상황을 유쾌해 할 변태가 몇이나 있겠습니까? 원래 치정이라는 건 무서운 법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신농을 질투하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이었죠. 두 사람은 부녀 같은 관계일 뿐입니다. 연적도 아닌 상대를 질투하는 건 제 속만 타는 일이니,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죠.

잊은 것을 떠올린 그녀도 죄가 없고, 옛날에 그녀를 키워준 그에게도 죄가 없다. 아무도 나쁘지 않다면 결국 제가 나쁜 게 아니겠습니까? 사실과 마주하는 건 아픈 과정이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가 나쁘다 생각하니 답은 쉽게 나오더군요. 저는 모든 것을 제자리로 되돌리기로 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저를 위해서.


기억을 지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뇌라는 건 복잡한 만큼 망가지기도 쉬우니까, 작은 변수만 줘도 삐걱거리기 마련입니다. 폭력에 노출된 사람의 인격이 어떻게 변하는지는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말하지 않겠습니다. 당신 안에 그 산증인이 있잖습니까? 하지만 전 달기처럼 비정한 사람이 되지는 못합니다. 얼른 망가뜨려 수족으로 부리려는 것도 아니니, 천천히 수를 썼지요. 너무 독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효과가 약하지도 않은 수를요.


독은 대부분 못 먹을 정도로 쓰지만, 사실 저희가 일반적으로 먹는 음식들에게도 독소가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맛도 향도 없지만 머리를 어지럽힐 정도의 풀은 지천에 널렸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누구나 알 수 있죠. 다만 백액호는 식물이나 약학엔 관심도 없었고, 신농도 그런 걸 가르치진 않은 모양이더군요. 덕분에 저는 일을 쉽게 진행할 수 있었으니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그녀는 제 말이라면 쉽게 믿고, 딱히 제 행동에 의문을 가지지도 않으니…. 남은 건 그저 먹이는 것뿐이지요. 간단한 이야기잖습니까?


평소 먹는 음식에, 마시는 물에, 잠자리에, 장식용 꽃처럼 속여서 머리카락에, 손가락에, 옷가지에…. 노출되는 빈도가 조금씩 늘어갈수록 효과는 확실하게 나타났습니다. 처음에는 잠이 잘 오지 않는다거나 몸이 무겁다는 정도였지만, 한 달 쯤 지나자 머리가 아파서 일어 설 수도 없다고 울어버리더군요. 솔직히 마음이 아팠지만, 한 편으로는 대단히 뿌듯했습니다. 몸이 망가질수록, 고통을 호소할수록, 조금씩 그녀에게서 옛 모습이 보였으니까 말입니다.


한 번 비탈길을 구르기 시작한 돌은 바닥에 도달할 때 까지 멈추지 않습니다. 저는 조급하게 굴다가 일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독초의 양을 늘리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양을 줄이지도 않았습니다. 뭔가를 눈치 챈 백액호가 식사를 거부하는 일도 있었지만, 잘 구슬리면 결국 입을 열었으니 상관없었습니다. 고열로 앓아누워 제 이름만 부를 때는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다른 남자랑 같이 지내는 것 같은 메스꺼움에 비하면 견딜 만한 고통이었고요.


두통, 고열, 구토와 발작.

튼튼한 몸이 조금은 쇠약해 질 정도로 수많은 고통들이 그녀의 몸에 머물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이름이 여러 개에서 저 하나로 좁혀지는 걸 보면서….

저는 기뻐했습니다.

당신에 의해 처음 자신의 피를 보았을 때만큼.

여와의 존재를 완벽하게 알아냈을 때만큼.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더 많이. 더 깊게 기뻐했습니다. 인내와 고통 끝에, 드디어 그녀를 되찾았으니까요.


…그런데, 그 태도는 뭡니까? 이만큼 이야기 했으면 슬슬 백액호를 돌려 줄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제가 너무 안일했습니까? 그녀가 왜 갑자기 당신을 찾아갔나는 궁금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찾아냈는지도 알고 싶지 않고요. 전 그냥 그녀를 돌려받기만 하면 됩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 하지 않나?”


무슨 소리를 하십니까? 태공망.


“…애초에 옷가지에 두기만 해도 영향을 미칠 정도의 풀이라면, 그걸 매일 만진 자네는….”


저는 멀쩡합니다만. 그렇지요? 흑점호. 잡담은 여기까지 합시다. 지금 당장 그녀를 넘기지 않는다면 저도 무력으로 일을 해결하겠습니다.


“나를 상대로?”


네.


“이건 정말, 안 되겠군. 백액호. 그대가 한 말의 의미는 다 이해했네. 물러서있게.”


그녀랑 무슨 이야기를 했습니까? 그것까지 들어야겠군요. 뇌공편을 쓰는 건 오랜만이지만 적당히 하진 않을 겁니다.


“그렇게 해야 할 거야, 신공표. 어설프게 공격했다간…”




“누구 하나가 목숨을 잃을 테니까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