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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재배소년

드림 동화합작 / 피노키오



 디스티 드림, 오리주 주의

※ 합작 홈 주소→ http://moonmist.wix.com/fairytale

 

 

 

노키오

written by Esoruen

 

 

 

올바르지 않은 천재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가.

 

셀렌은 지저분한 바닥과 코를 찌르는 알코올 냄새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지간하면 그냥 지나가고 싶지만, 의무실 바깥까지 이지경이 되어있다면 무서워서라도 모른 척 할 수가 없다. 한숨을 내쉬고 열려있는 의무실의 안으로 발을 들인 그녀는, 어두운 조명 아래 빛나는 메스에 숨을 멈추었다.

아직 한창 수술 중이었나. 어차피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멈춰주길 바라는 수술이겠지만, 아쉽게도 셀렌은 일단 디스티의 아랫사람이었다. 기척을 죽이고 그의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셀렌은 수술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무엇인지 굳이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

 

“누구?”

 

베고 찢은 살을 봉합하던 도중, 이제야 누군가가 제 공간에 발을 들인 걸 눈치 챈 디스티가 소리를 내 아는 척을 해왔다. 어차피 이 의무실에 들락날락 할 사람은, 열차에서 한 명 밖에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

 

“다 끝났습니까?”

“아직”

“그럼 하던 일부터 마저 하십시오. 마스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습니다”

“거 매정하군, 이히히”

 

수술 중 이렇게 잡담이 많은 의사는 아마 없지 않을까. 그다지 군의관의 의무니 책임이니 하는 걸 느끼지 않는 디스티조차도 제가 수다스럽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수술은, 제겐 너무 간단하다. 간단하고 반복적이고, 이제는 손에 익어 아마 눈을 감고도 정확하게 해낼 개조수술.

 

“자, 다했다!”

 

메스를 내려놓고 피에 젖은 수술용 장갑을 벗은 그는 잽싸게 마스크를 벗었다. 환자를 향한 배려 같은 건 없는 행동이었지만, 셀렌은 이제 그 행색에 너무 익숙해 져서 지적을 하는 수고를 하지도 않았다.

 

“그래, 무슨 일이지? 중위”

“바닥이 엉망이군요”

“뭐, 오늘은 유난히 손 봐야할 게 많아서?”

“문도 열려있었습니다”

“이런, 누가 나가면서 닫는 걸 까먹었나? 곤란한 환자군!”

 

이히히히. 히스테릭한 웃음이 넓은 의무실에 메아리처럼 울렸다.

여기저기 놓여있는 것은 기계부품과 인체의 모조품들. 저 멀리 치워져있는 수술용 침대들 위엔, 아직 깨어나지 않은 부상자들이 시체처럼 놓여있었다.

오늘은 또 얼마나 개조한 걸까. 허락도 받지 않았을 개조수술들에 희생된 불쌍한 아군들을 훑어본 셀렌이 바닥의 피 웅덩이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늘 말하지만, 위생관념 이라는 것은 알고 계시겠지요?”

“그 말은 이제 너무 들어서 지겨운데?”

“알고 있다면 수술에 조금 더 주의를 해주셨으면 합니다만. 이래서는 수술 부작용으로 죽기보단 출혈 과다로 죽겠군요”

“당연히 한 명이 이만큼 피를 흘리면 죽지! 다 내가 알아서 하니 중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아. 아니면 본인이 그렇게 죽을 까 걱정 되는 건가?”

“설마요”

 

언제나 말했지만, 자신은 그의 개조를 말리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게 곧 자신도 개조당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제게 하지만 않는다면 뭘 하든 말리지 않는다’라고 봐도 좋은 가치관이었으니, 저 농담은 언제 들어도 불쾌할 수밖에 없는 거겠지.

아니, 사실 이미 ‘개조 당했기 때문에’ 더 불쾌해 한 것이다.

그 원치도 않았던 개조를, 며칠이나 잠들어 있어야 했었던 대수술을 또 겪을 바에는 그냥 죽는 것이 좋으리라. 그녀는 오른쪽에서 뛰고 있는 제 심장을, 그리고 그 심장을 거기 있게 한 상대를 언제나 원망스럽게 생각했다.

 

“그래서, 할 말은 그것뿐인가?”

“네”

“싱겁군!”

“군의관에겐 싱거울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에겐 아닙니다. 코일 대위가 봤다면 또 총부터 들었겠죠”

“대위는 다혈질이라 문제지. 무서워서 살 수가 있겠나!”

 

과연 그럴까. 셀렌은 오히려 코일의 반응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자신 정도니 들어와서 충고하는 정도에 그치는 거지, 그 누구라도 복도가 피투성이인 걸 기뻐할 리 없었다.

 

“청소는 아무나 시켜. 설마 내게 시키려고 했나?”

“시키면 할 사람처럼 말하시는 군요”

“히히히”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환자를 내버려두고 제 자리로 돌아간 디스티는 서랍에서 새 장갑을 꺼냈다. 언제든 수술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듯, 디스티는 가운과 수술용 장갑을 절대 벗지 않았다. 덕분에 열차 안에 있는 이들은 처음 디스티를 만나도 그가 반란군의 군의관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만, 반대로 그의 본성을 아는 자들은 그를 보기만 해도 그로테스크한 개조와 결과물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도수 없는 안경을 벗고 책상에 엎드리려던 그는 제 결과물들을 슥 훑어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물론 정말로 결과물이 마음에 들어서 웃어 보이는 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그 미소는, 오늘도 재밌게 잘 놀았다는, 실컷 밖에서 뛰어놀고 집으로 돌아오는 어린아이의 웃음 같은 것에 더 가깝겠지.

 

“그렇게 재미있습니까?”

“새삼스러운 질문이군, 중위”

 

그래. 확실히 새삼스럽다. 하루 이틀일도 아니고, 제국에 있을 때부터 그의 광기어린 놀이를 전부 지켜봐온 그녀가 묻기에는 너무나도 새삼스럽긴 했지. 하지만 때론 사람이란 당연시 여기던 것에 의문을 품는 경우가 있었고, 반복되는 행동에 그 이유를 묻고 싶어지는 때가 있는 법이었다.

 

“군의관은 그저, 즐거워서 개조를 하는 것입니까?”

 

셀렌의 입장에서 디스티의 열렬한 인체개조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자라오며 많은 감정을 잊고, 취향과 호불호마저 희미해진 그녀에겐 공감하긴 힘들어도 이해하기까지 힘든 것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해의 영역마저도, 디스티만큼은 예외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어떤 정신과 의사나 카운슬러도 그의 내면과 광증을 파헤칠 수는 없을 테니, 그녀가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이상할 건 없겠지만 말이다.

셀렌은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의 광증을 지식과 성취감에 의한 부속물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에 열중하다가 미쳐버리는 사람은 꽤 흔한 편이었고, 그녀의 동료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디스티는 딱히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노력하지도, 완벽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만약 정말로 성취감을 바랬다면, 제국을 나올 일도 없었겠지. 황제가 맡긴 그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서 기를 쓰고 버텼을 테니까.

‘따분해, 이제 재미없어졌어. 내가 원하는 걸 못하는 건 의미가 없지’

디스티가 제국은 떠나게 된 이유는 단지 그것뿐이었다. 좋은 대우, 넘쳐나는 재료. 그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반란군으로 붙은 이유가 ‘따분해서’였다고 하면, 그 황제는 무슨 표정을 지을까.

 

“즐겁지, 즐겁고말고! 알겠나, 중위? 나는 명예나 돈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야. 자네는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누구라도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상관없네. 난 나를 위해서 움직이니까! 흐흐흐. 그리고 원래 걸작은 즐기며 만들어야 나오는 거라네. 의무감은 사람을 망치기 마련이거든”

 

왜 그런 말을 하며 자신을 보는 걸까. 이유는 잘 알고 있었지만, 이유를 안다고 불쾌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래. 확실히 그녀는 ‘의무감’과 ‘강제성’에 의해 망가진 사람이었다. 제 아버지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다가, 목숨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잃어버렸으니까. 취미와 기호, 희로애락,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것 까지. 모두 말이다. 비록 지금은 제 의지대로 선택하고, 감정에 대한 것도 차근차근 회복해가는 중이라지만, 한번 전쟁의 도구로 길러진 사람이 일반적인 사고를 하게 되기까지는 오랜 기간이 필요했다.

그런 그녀에게 처음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주고, 감정들을 일깨워 주는 건, 아이러니하지만 다름 아닌 바로 눈앞의 저 미친 군의관이었지만 말이다.

 

“목표도 없는 오락이 무슨 의미를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호오, 중위다운 말이군. 목표라… 흐음”

 

여전히 장광설을 지껄이며 말을 빙빙 돌릴 줄 알았는데. 무슨 바람이 분 걸까. 디스티는 답지 않게 진지한 얼굴로 그녀의 말에 대답할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역시 없군! 그런 건 없어!”

“그렇습니까”

“그래! 미래에 생길지는 몰라도, 지금은 없네”

“심심하다는 이유로 개조하는 당신을 이해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어서 다행이군요”

 

셀렌은 이 열차의 주인, 총통 테슬러를 떠올리며 그리 말했다. 물론 총통도 완전히 디스티를 이해하거나 옹호해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개조의 효율성만큼은 이 열차에서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 주고 있었으니 디스티에겐 이 어찌 기쁘지 않은 일이겠는가.

 

“뭐, 심심해서라도 해도 아무나 막 개조해 주는 건 아니라네. 중위. 뭔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도 재료는 가린다네!”

“아, 그렇습니까?”

“그래. 뭐, 반대로 말하자면 손대지 않고는 못 버티게 만드는 재료도 있지. 총통이라던가, 코일 대위라던가! 물론 자네도!”

“그건 별로 기쁘지 않군요”

 

이런 상황에서는 ‘별로’가 아니라 ‘전혀’가 어울릴까. 그녀는 잠깐 제 단어선택에 문제점을 느꼈지만, 대화 상대는 그걸 수정할 시간 같은 건 주어지지 않았다.

 

“중위, 혹시 피노키오 이야기를 아나?”

“동화 피노키오 말입니까?”

“그래. 나무 인형이 나오는 그거”

 

굉장히 오래 전, 어머니와 함께 살 때 들은 적이 있는 이야기였다. 한 목수가 만든 나무인형이 생명을 얻어 모험을 겪고, 끝내 사람이 되는 이야기였던가. 희미한 기억이지만, 행복한 결말로 끝났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압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이란 인형이 되기 전 나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네. 나는 이 세상에 몇 없는 목수로서, 개조라는 획기적인 방법으로 나무들을 인형으로 만들어 주는 거지. 뭐 그러니 개중에서는 정말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도 있지 않겠나?”

“…이해하기 힘든 논리로군요”

 

애초에 사람다운 사람이란 뭐지? 사람답지 않은 목수가 만든 인형이, 진짜 사람같이 행동하는 게 가능할까? 그의 말은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시선을 내리 깐 셀렌을 가만히 바라보던 디스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다가, 결국 소리 내어 웃어버리고 말았다.

 

“히히, 이히히, 흐하하하!”

 

시원하게 웃은 그는 자신을 향하는 녹색 눈동자에 급히 입을 닫았다. 딱히 그녀가 무서운 것은 아니었지만, 웃으면 대화를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는 언제나 셀렌과의 대화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감정이 부족한 이 원칙주의적인 군인은, 제 가장 훌륭한 재료였으니까.

 

“나는 말이지, 셀렌”

 

‘셀렌’ 그의 입에서 나오는 제 이름은 언제나 낯설다. 낯설고, 불쾌하고, 불안하다.

 

“자네가 가장 피노키오에 가까운 인형이라고 생각하네”

 

채도 높은 자주색 눈동자에 광기가 스쳤다. 행복한 미소. 오른쪽 가슴에서 울리는 불규칙적인 심장박동. 이것은 공포인가, 혐오인가.

그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셀렌의 앞으로, 나사 하나가 굴러왔다. 데구르르. 툭. 피에 젖은, 작은 십자 못 나사 하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