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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Dungeon & Fighter

드림 음식합작 / 닭고기 수프


※ 데스페라도 드림, 오리주 주의.

※ 합작이 펑되어 그냥 올립니다...




닭고기 수프

written by Esoruen




감기에 걸리는 것과 총에 맞는 것. 어느 쪽이 제 인생에서 더 자주 있는 일이었던가. 데스페라도는 양 손을 펴서 굳이 꼽아보지 않아도 저 문제에 대해서 아주 쉽게 답할 수 있었다. 단언컨대, 자신은 감기에 걸려 앓아누운 날 보단 총에 맞아 드러누운 적이 더 많았다. 물론 따지고 보면 둘 다 빈도가 높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수치로 본다면 총에 맞은 적이 더 많다는 의미였다.

어깨. . 그리고 재수 없게 옆구리를 스친 적도 있었던가. 이래저래 급소를 피해 맞은 총알들은 대부분 간단하게 적출되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아직까지 왼쪽 어깨가 욱신거리긴 하지만, 총알도 빼냈고 소독도 잘 했으니 이 상처도 곧 나을 것이다. 분명, 그럴 터인데.

 

데스페라도, 괜찮아?”

, 이게 몇 번이나 괜찮으냐고 물은 건지는 아냐.”

 

제 연인은 뭐가 이리 걱정되어 하루 종일 안부를 묻고 있단 말인가. 데스페라도는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얼굴에 차마 뭐라고 하지 못하고 한숨만 쉬었다.

 

,  100번 쯤 되었나?”

잘 아네. 그만 좀 물어. 누가 보면 머리에 총 맞은 줄 알겠네.”

하지만 나 때문에 다친 거잖아?”

너 때문 아니니까.”

 

아니. 따지고 보면 루엔 때문이기는 했다. 그녀가 위험할 때, 도와준답시고 나서다가 맞은 총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루엔이 강요한 상황도 아니었고, 제가 나서고 싶어 나선 건데 과연 온전히 이걸 그녀 때문이다.’ 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어쨌든, 언제든 안 되겠다 싶으면 말해야 해. 알겠지? 진통제 구해줄 테니까.”

내 걱정은 그만해도 되니까 진정해.”

난 충분히 진정했는데?!”

표정이 전혀 아닌데.”

 

저렇게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진정했다고 말해도 믿는 사람 따윈 없다. 데스페라도는 냉정하게 연인의 말을 부정하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난 잔다. 좀 자면 괜찮아지니 넌 너 할 일이나 해. 괜히 내 옆에 붙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안절부절 하는 꼴 보면 내가 더 불편하니까.”

으음. 알았어.”

 

못마땅한 얼굴로 침대 옆 의자에서 일어난 루엔은 쉽게 방을 나가지 못했다. 몇 번이고 누워있는 그를 돌아보며 우물쭈물하던 그녀는, 한참 뒤 무언가 좋은 생각이 난 건지 손뼉을 치고 외쳤다.

 

그래, 내가 맛있는 거 해줄게! 뭐 먹고 싶어?”

먹고 싶은 거? 딱히 없는데.”

정말? 내가 특별히 해 주는 건데?”

 

저렇게 까지 말하면 뭔가 부탁을 해야 될 것 같지만, 그는 정말로 특별히 먹고 싶은 것이 없었다. 식욕도 그다지 없고, 콩깍지니 뭐니 할지 몰라도 제겐 루엔의 음식은 뭐든 맛있게 느껴졌으니까.

흐음.’ 잠깐 고민하던 그는 결국 선택권을 상대에게 넘겨주었다.

 

그럼 네가 먹여주고 싶은 걸로 해주던가.”

정말? 그걸로 오케이?”

그래. 난 잘 거니까, 밥시간 되면 깨우던가 해.”

,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알았어!”

 

뭔가 해주고 싶은 요리가 있었던 걸까. 루엔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 방을 나갔다. ‘이제야 겨우 조용해졌네.’ 연인의 걱정이 싫은 건 아니지만 하도 신경써주는 탓에 제가 다 피곤해진 데스페라도는 눈을 감고 옅은 잠을 청했다.

달그락. 덜컹. 끼익.

문 밖에서 들리는 소리는 제법 시끄러웠지만, 부상을 입어 피곤한 데스페라도는 웬일로 깨어나질 않았다. 짧고 깊은 잠. 중천 가까이에 뜬 해가 지평선으로 넘어갈 때 까지 미동도 않고 자던 그는 저녁시간이 다 되자 소리도 없이 깨어났다.

 

?”

 

뭔가, 좋은 냄새가 난다. 뭘 만드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식욕이 없던 몸이 배고픔을 느낄 정도로 먹음직스러운 냄새였다.

이불도 정리하지 않고 일어난 그는 문을 열어 바깥을 살폈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냄비 앞, 루엔은 들뜬 얼굴로 냄비 안의 내용물을 젓고 있었다. 뭘 만들고 있기에 저렇게 신난 걸까. 그녀를 부르려던 데스페라도는 계획을 바꿔 몰래 루엔의 뒤로 다가가 보았다.

 

스프인가?’

 

멀건 국물. 각종 야채와 새의 고기. 누가 봐도 환자를 위한 음식 같은 비주얼.

나를 아주 중병 환자로 아는 건가.’ 데스페라도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고, 덕분에 루엔은 제 뒤에 누군가가 서있다는 걸 눈치 채고 말았다.

 

, 깜짝이야! 일어났어?”

그래. 뭘 만드는 거야?”

이거? 닭고기 수프!”

 

뭔가 대단한 특식이라도 만들어 줄 것처럼 말한 사람이 만든 음식치고는, 꽤나 소박한 저녁이다. 물론 스케일과는 별개로, 상당히 먹음직스럽게 생겼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실이지만 말이다.

 

, 어렸을 땐 아프면 언제나 엄마가 이걸 만들어줬거든.”

흐음.”

그래서 이걸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할까. 물론 엄마가 만들어 준 것 보단 별로일지 모르지만 말이야. 알잖아. 우리 엄마 요리 잘하는 거.”

별로 상관없지 않나? 굳이 비교할 이유도 없고, 네 음식은 뭐든 맛있으니까.”

그건 일부러 네 입에 맞게 간을 해서입니다만.”

 

자기가 설마 그것도 모를 줄 알았나. 그렇게 대답하려던 데스페라도는 조금은 발그레해진 그녀의 뺨을 보곤 대답을 바꾸었다.

 

다 됐어?”

?”

수프. 다 됐냐고. 배고픈데.”

아아. . 다 됐어! 앉아있어, 내가 가져다줄게! 같이 저녁 먹자!”

 

역시 요리해 준 사람을 가장 쉽게 기쁘게 하는 건 맛있게 잘 먹어주는 것뿐이겠지. 마음 같아선 설거지라도 해주고 싶지만, 이런 몸으로 나선다고 하면 아마 루엔은 전혀 기뻐하지 않고 상을 엎어버릴 정도로 화낼 테니 어쩔 수 없다.

상처의 아픔도 잊을 채 웃는 얼굴로 식탁에 앉은 그는 수프를 그릇에 퍼 담는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가끔은 아픈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간호 하나 때문에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이 들다니. 참으로 어리석지만, 그는 이 바보 같은 생각이 싫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