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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Dungeon & Fighter

드림 노래합작 / 로미오 & 줄리엣



데스페라도 드림, 오리주 주의, 주제가 된 노래는 슈프리팀 - 로미오&줄리엣

※ 합작 홈 주소  http://merchandream.wix.com/songforyou

 

 

 

미오 & 줄리엣

written by Esoruen

 

 

 

그것은 데스페라도와 루엔이 동거한지 4년, 연인이 된 지는 3년을 조금 넘었을 시절 일어났던 웃지 못 할 해프닝 중 하나였다.

 

 

마이스터는 제 뒤에서 끊임없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는 손님을 힐끔 쳐다보았다. 여기는 엄연히 제 작업실이고, 허락을 받고 머무는 거라고 해도 손님이라면 좀 조용히 있어줬으면 좋겠는데. 평소 같으면 이렇게 고민하지 않고 ‘조용히 할 거 아니면 나가!’ 라고 단박에 말했겠지만, 지금 이 손님은 그렇게 대할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저기, 루엔”

“……”

“…루엔!”

“응?”

 

도대체 뭘 하고 있어서 제가 부르는 것도 못들은 건가. 그는 겨우 고개를 든 루엔이 뭘 하고 있었는지 확인하곤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차버렸다.

귀에 거슬리는 그 소음의 정체는 다름 아닌 종이와 펜의 소리. 편지라도 쓰고 있었나? 구겨진 종이 한 뭉텅이와 낙서투성이인 공책, 그리고 싸구려 볼펜을 들고 있는 그녀는 마이스터의 눈빛에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미안, 미안. 생각 좀 하느라 못 들었어. 왜 불렀어?”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일 하고 있거든? 좀 조용히 해 주면 안 될까”

“어, 미안해. 나 시끄러웠어?”

“아예 자각이 없었던 거야…?”

 

뭐,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그녀는 모래바람이 몰아치고 총성이 끊이지 않는 무법지대에서 나고 자랐으니, 종이와 펜의 불협화음 같은 게 소음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을 것이다. 문화적 차이, 아니 개념의 차이인가? 한숨과 함께 들고 있던 드라이버를 내려놓은 그는 며칠 전 그녀가 자신을 찾아왔던 날 대뜸 꺼냈던 말을 떠올렸다.

 

‘나 당분간 여기서 신세져도 될까? 데스페라도에겐 내가 여기 있다는 거 말하지 마’

 

또 부부싸움이라도 했나. 그렇게 생각하고 ‘알겠다’고 해버린 제가 멍청이지. 마이스터는 데스페라도와 루엔이 이제까지 함께하며 얼마나 싸웠는지, 그리고 어떻게 화해했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이번 싸움도 짧고 허무하게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당분간 이라는 것도, 길어봐야 3일 정도의 이야기겠지.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는데…

 

‘벌써 일주일째라고, 어이. 무슨 짓을 한 거야 데스페라도…’

 

예상과 다르게 그녀는 일주일 째 무법지대로 돌아가지 않고 제 연구소에 머물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마이스터는 한탄했지만 사실 그녀의 체류자체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루엔은 가만히 틀어박혀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 평소에는 베릭트나 제너럴을 만나러 간다고 자주 외출해서, 좀 오래 머문다고 해도 작업에 방해가 되거나 하진 않았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외출도 않고 뭔가 부스럭거리고 있으니 처음으로 화가 났고, 거슬린다는 생각을 했을 뿐. 솔직히 오늘도 얌전히 외출했다가 돌아와 잠만 잤다면 곤란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지도 몰랐다.

 

“미안. 미안. 방에 들어가서 할까?”

“그래, 그래주면 고맙긴 한데… 뭐 하는 거야? 그림이라도 그려?”

“아니. 그냥 뭐”

 

말을 돌리는 걸 보니 그다지 생산적인 활동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뭐, 그녀가 뭘 하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똑똑’

“응?”

 

또 손님인가. 마이스터는 루엔에게 잔소리를 계속하려다가 상대를 확인하기 위해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어차피 제 작업실에 올만한 사람은 겐트 수비군 쪽 병사거나, 루엔을 찾아 온 제너럴 정도겠지만, 혹시라도 적이라면 곤란해지니까 덜컥 아무나 들일 순 없다. ‘누구야?’ 대수롭지 않게 문 가까이에서 외치자, 익숙한 목소리의 대답이 돌아왔다.

 

“루엔 여기 있지?”

“……”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마이스터는 문 너머에 있을 데스페라도의 표정이 대강 짐작이 가서 실소하고 말았다. 목소리만 들어도 아주 죽을상인 게 보이니, 실제 표정은 더 가관이겠지.

 

“없다고 해, 없어”

 

대답을 망설이는 마이스터에게 루엔은 잔뜩 목소리를 죽이고 그렇게 말했지만, 데스페라도의 감은 속일 수 없었다. ‘있는 거 다 아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열어라’ 당장이라도 문을 부술 것 같은 협박조의 말투. 문 너머로 느껴지는 살기에 마이스터가 다급히 물었다.

 

“야, 루엔. 도대체 무슨 일인지 말해주면 좋겠는데. 쟤 왜 저래? 너희 싸웠지?”

“알 거 없어. 열어주지 마. 나 없다고 해”

“저 녀석이 어지간히 믿어주겠다. 왜 그래 진짜? 이유라도 알아야 내가…”

 

쾅. 마이스터의 말을 끊은 것은 요란한 발길질 소리였다. ‘문 안 열어?’ 소리 지르는 것도 아닌데 충분히 위협적인 그의 목소리는 다음번에는 발길질로 끝내지 않는다는 걸 암시하는 듯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야, 루엔. 잘 들어. 내 방에 들어가면 옷장 뒤에 비상구 있거든? 거기로 나가게 되면 겐트 쪽으로 출구가 나있어. 그쪽으로 튀어 일단”

“마이스터, 다음에 올 땐 도넛 3박스와 같이 올게”

“목숨 값 치곤 엄청 싼 거 같다만 고마운 줄 알면 빨리 가, 문 부숴먹기 싫으니까”

 

차마 소리 지르고 싶어도 데스페라도가 들을까봐 그럴 수 없는 두 사람은 최대한 소곤소곤 비밀작전을 세웠다. 몇 없는 짐을 챙겨 루엔이 방에 들어가는 걸 확인한 마이스터는 딱 10초를 센 후 문을 열었고, 리볼버를 장전하고 있는 데스페라도에게 말했다.

 

“너 지금 문 부수려고 했지?”

“잘 알면 진작 열지 그랬냐. 그래도 용케 총질하기 전엔 열었네?”

“이 미친…”

 

아, 원래 이놈은 이런 녀석이었지. 새삼스럽게 미친놈은 무슨. 욕하려던 자신을 탓한 마이스터는 방금 전까지 루엔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는 깔끔한 작업실 안으로 달갑지 않은 손님을 들였다.

 

“루엔 없어. 왜 난리야? 나 중요한 작업 중인데 놀랐잖아?”

“진짜 없냐?

“속고만 살았어?”

 

두리번거리며 연구실 안을 살피던 그는 땅이 꺼져라 한숨 쉬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여기서 담배 피지 마라는 소리는 한 100번쯤은 한 거 같은데. 니코틴 때문에 기억력도 감퇴한 건가. ‘흠흠’ 마이스터가 태클대신 헛기침으로 주의를 주자 알아서 담배를 도로 뱉은 그는 아무 곳에나 앉아 흙먼지가 묻은 페도라를 벗었다.

 

“무슨 일이야? 루엔을 왜 여기서 찾아?”

 

‘지금쯤이면 겐트 뒷골목으로 빠져나갔을까?’ 머릿속으론 그녀가 무사히 도망쳤는가 생각하고 있는 주제에 그는 시침 뚝 떼고 루엔의 행방을 물었다. 마음을 감추고 생각을 감추는 게 능숙한 마이스터에겐, 이정도 거짓말은 일도 아니었다. 물론 데스페라도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제가 루엔을 숨겨줬다는 걸 알면 분명 총부터 잡을 테니까.

 

“그 녀석, 싸운 걸 가지고 가출해서…”

“가출? 그러니까, 집을 나갔다고?”

“그래. 한 이틀 뒤엔 돌아오겠지 싶어서 가만있었는데 안 오잖아? 그래서 찾으러 다니다가 혹시 여기 왔나 싶어서 왔다만… 여긴 없나”

 

‘역시 부부싸움이냐!’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진 마이스터가 어색하게 웃었다.

너희 커플이 싸우든 말든, 나와는 아무 상관없지만 주변에 피해만 주지 않으면 좋겠다만. 마음속으로만 열심히 딴죽을 거는 그의 표정이 잠깐 위태롭게 일그러졌지만, 마이스터는 의지의 천계인이었다.

 

“뭣 때문에 싸워서 가출까지 해? 너 무슨 심한 소리라도 했어?”

 

이왕 당사자와 만난 거, 이유나 알아볼까. 겨우 무표정을 되찾은 그는 담배가 없어 초조하게 손만 쥐락펴락하는 데스페라도를 슬쩍 떠보았다.

 

“…심한 소리는 무슨, 그 녀석이 속을 긁어놓으니까…”

“어? 루엔 쪽이 말실수 한 거야?”

“…그건 아니고. 그러니까…”

 

이게 몇 번째 한숨이지. 데스페라도는 계속해서 한숨만 내쉬며 머리를 긁적이다가 그동안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말해주었다.

모든 사건의 발단은, 주점에서 본 타로카드 점의 점괘 때문이었다. 그녀가 집을 나가기 하루 전날 저녁. 카르텔과의 전투 후 가볍게 술 한 잔 하러 간 두 사람은 주점 구석에서 머물던 떠돌이 점술사에게 점을 보게 되었는데, 이 점괘가 아무리 생각해도 좋다고 할 수가 없는 대답이 나온 것이다. ‘두 사람, 안 어울리는데’ 카드를 다 뒤집자마자 대뜸 그런 소리를 한 점술사는 거침없이 온갖 악담을 늘어놓았고, 데스페라도는 그걸 다 듣지 않고 루엔을 끌고 나왔다. 여기까지는 왜 싸웠나 짐작도 안 가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뭐야, 그래도 돈 내고 본 건데. 아깝게. 끝까지 들었어도 되잖아?”

“넌 그걸 듣고만 있냐”

“뭐 어때 미신인 거”

“미신이라도”

 

그렇다. 데스페라도에게는 그 모든 악담들이 진짜건 가짜건 듣기 싫은 소리였다면, 루엔에게는 그 모든 것이 그저 오락일 뿐이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애초에 저런 신빙성 없는 걸 누가 믿어, 라는 것이 루엔의 의견이었지만. 듣기 싫은 소리를 넘길 줄 모르는 그에겐 연인의 그런 태도조차도 심기 불편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넌 저런 거 듣고도 화도 안 나냐?”

“별로. 그나저나 의외네? 너 신도 안 믿고 종교도 없으면서 미신은 믿는 거야?”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넌 나랑 안 어울린다는 소리가 그냥 넘겨져?”

“왜 화를 내고 그래?!”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자꾸 자신을 향해 윽박지르면 화가 나는 법인데, 평생을 무법지대에서 살아와 살기등등한 루엔은 오죽하겠는가. 그렇게 서로 목소리를 높이고, 서로 사랑하니 마니 대판 싸운 두 사람은 따로 떨어져 집으로 갔다는 것이 이야기의 끝이었다.

 

“내가 먼저 들어온 줄 알고, 일단 화가 식으면 사과를 하던 화해를 하던 하려고 했는데… 이틀이 지나도 집에 안 들어오잖아? 설마 이 녀석이 카르텔에게 당했을 리도 없고, 당했다면 소문이 났을 텐데 그것도 아니잖아? 그래서 여기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아…”

 

이 자식들이. 겨우 그런 일로 싸워서 내 시간과 공간을 방해해?

차라리 물어보지 않았던 것이 좋았으리라. 몰랐다면. 자세한 사정을 모른다면 ‘아, 뭔가 심각한 일이니 집까지 나왔겠지~’하고 넘어갈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건 뭐 그냥 평범한 바보커플의 바보 같은 싸움 아닌가?

 

“뭐, 없다면 됐어. 간다?”

“그래. 잘 가던가. …그러고 보니 이제 어디 갈 건데? 더 짐작 가는 곳 있어?”

“있긴 하지. 절대 안 갔으면 좋겠긴 하다만 갈 곳 같은 곳이”

 

그래. 사실 자신도 알고 있다. 루엔이 제 연구소 말고 갈만한 곳이라면, 역시 제너럴 곁 밖에 없겠지. 군이라면 그 넓은 막사에 그녀 한 명 재워줄 방이 없는 것도 아닐 테고, 이 전에도 루엔은 카르텔 소탕 당시 도움을 주러 가서 부대 내에서 여러 번 묵었던 적이 있으니까. 무엇보다 모두가 눈치를 준다고 해도 제너럴이 그녀를 내칠 리가 없다, 제너럴은 루엔을 좋아하니까.

 

“뭐… 거기엔 있길 빌게, 얼른 가라. 나 작업 할 거니까”

“방해해서 미안하군. 간다”

 

황도군은 또 얼마나 저 커플 때문에 뒤집어지려나. 데스페라도가 나가자마자 도로 책상 앞에 앉은 마이스터는 진이 다 빠진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대었다.

 

 

 

 

 

“…그러니까, 마이스터의 집에서 쫓겨났다?”

“네. 여기서 며칠만 있다가 가도 될까요?”

“물론이죠. 엔 부탁인데 그 정도쯤이야”

 

요 며칠 루엔이 마이스터의 집에 머무는 동안 그녀와 몇 번 만나며 자세한 사정을 들었던 제너럴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부탁에도 전혀 문제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다’ 루엔은 드디어 안심했다는 듯 소파에 몸을 기대고 긴 한숨을 내쉬었지만, 옆에 있는 블래스터는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가출했다고 하네요”

“…가출?! 어, 그러니까. 데스페라도 두고?”

“네”

 

‘허어’ 블래스터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루엔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떨어져선 못 사는, 무법지대의 가장 흉악한 닭살커플이 무슨 일로? 마음 같아선 자세히 묻고 싶지만, 알아봐야 좋을 게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자신의 감을 신뢰하는 그는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 대신 자리를 피하는 것을 선택했다.

 

“뭐, 푹 쉬어~ 난 갈게?”

“응? 아아, 수고해 블래스터. 황도군은 언제나 다들 바쁘다니까?”

“뭐 제너럴 만하겠어?”

 

블래스터의 그 말은 놀리는 게 아니라 진심이었다. 조금은 측은하다는 듯 제너럴을 본 그는 어깨를 으쓱이고 방을 나갔다.

 

“그러고 보니 저 때문에 안 그래도 바쁜데 일 못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네? 아, 그런 거 아니에요. 엔은 편하게 앉아서 쉬다가, 나중에 방이 정리 되는대로 가서 쉬세요. 전 제 일을 하면 되고… 정 답답하면 부대 내를 둘러보거나…”

“아뇨 괜찮아요! 전 여기 있고 싶으니까… 음, 최대한 조용히 있을게요!”

“그러겠다면야…”

 

자신이야 고마운 일이지. 제너럴은 눈웃음으로 그녀에게 답하고 도로 책상에 앉아 서류를 훑었다.

딱히 이런 가출로 두 사람이 헤어지거나 오랫동안 금이 갈 리가 없다는 건 제너럴이 제일 알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단순히 서로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믿고 의지하고 있는 관계니까. 아마 이렇게 며칠 냉전을 유지하다가, 또 훌쩍 무법지대로 돌아가겠지.

그럼에도 그가 이 사건을 ‘고마운 일’이라고 말하는 건, 단지 최근은 볼 일이 없었던 그녀를 자주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한 3일은 머무르려나…’

 

데스페라도도 바보가 아니니 아마 여기로 그녀를 찾으러 오겠지. 아니, 어쩌면 찾아오기 전에 루엔이 마음을 정리하고 돌아갈지도. 막상 그녀는 조용히 있는데도 잡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일할 수 없어진 그는 소파에 앉아 신문을 훑어보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정도 머무를 건가요?”

 

흠. 다음 페이지로 넘기려다 말고 말을 뜸들이며 동작을 멈춘 그녀는 눈부시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평생?”

“…네??”

“안 가면 안 돼요?”

 

잠깐. 이건 예상 밖인데. 웃어야 하나 심각해야 하나 잠깐 고민하던 그는 바깥쪽 복도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몸을 일으켰다. 우당탕. 무언가가 넘어지는 소리와 블랙로즈들의 ‘안 됩니다’라는 말소리.

설마. 이렇게 빨리?

데스페라도가 온 것을 눈치 챈 제너럴은 제 방의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그의 존재를 눈치 챈 것은 제너럴뿐만이 아니었다.

 

“나 참”

 

늘어져라 앉아있던 몸을 벌떡 일으킨 그녀는 잽싸게 방문을 걸어 잠그고 리볼버를 꺼냈다. 아무리 무법지대 총잡이들의 부부싸움이라 해도, 부대 내에서 총격전은 사양하고 싶은데.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는 제너럴과 달리 루엔은 빈 실린더에 총탄을 채워 넣으며 웃었다.

 

“미안해요 제너럴, 일 하는 데 방해 되죠?”

“그게… …네, 뭐”

 

아무리 그녀가 좋아도 이건 아니라고 못 하지. 제너럴은 그녀의 미소에 어색하게 따라 웃어 보았다. 아아, 이걸 어쩌나.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는 루엔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제너럴은 제 방과 방 앞의 복도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만약의 상황엔, 제가 무력으로 말려야지. 그렇게 다짐하고 있을 때, 성큼성큼 다가오던 발소리가 멈추었다.

 

“야, 너 안 나와?”

 

소리는 지르고 있지 않지만, 누가 들어도 당장이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올 것 같은 화난 목소리다. 제너럴은 제 방문을 쾅쾅 두드리는 데스페라도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지만, 루엔은 오히려 여유로운 표정으로 문에 딱 붙어 차분히 대꾸할 뿐이었다.

 

“안 나가면 어쩔 건데? 용케도 찾았네?”

“네가 갈 곳이 여기 아니면 마이스터 작업실 밖에 더 있냐?”

“외갓집도 있고 베릭트 씨 곁도 있는데?”

“됐고 빨리 문 열어. 부수고 들어가기 전에”

“퍽이나!”

 

코웃음을 친 루엔은 데스페라도가 문을 두드리는 걸 멈출 때 까지 입을 꾹 다물었다. ‘이거, 괜찮은 걸까’ 비록 제가 두 사람의 사생활을 다 안다곤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제너럴이 아는 한도 안에선 두 사람의 싸움은 격렬하다가도 어느 틈엔가 순식간에 분노가 사그라지어 화해하는 형식이었는데. 이번 싸움은 유난히도 길고 격렬하다. 그건 아마도 데스페라도의 문제라기 보단, 루엔이 단단히 화가 나 그런 거겠지.

 

“제너럴 그 안에 있냐?”

“그건 왜?”

“넌 가도 하필 그 기생오라비 곁으로 가야겠냐!!”

 

아니 잠깐, 그래도 엄연히 황도군의 장군님인데 ‘기생오라비’라니. 이건 자신 쪽에서 화내도 될 것 같은데. 그리고 애초에 자기가 먼저 잘못해서 싸워놓고 루엔이 다른 남자 곁으로 가니 화내는 놈이, 자기보고 기생오라비 운운할 수 있는 건가?

얌전히 싸움을 지켜보던 제너럴은 끼어들어 한 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루엔은 직접 그가 나설 필요도 없게 만들었다.

 

“왜? 내가 어딜 가던 내 맘이거든요 데스페라도 씨? 아니면 뭐야, 우리 상냥한 장군님은 너랑 달리 소리도 안 지르고 화도 안 내니까 찔렸어?”

“너 이러기냐? 어?”

“뭐? 내가 뭐?! 그 점쟁이 말이 딱 맞네, 그치~? 하늘이 나서서 방해하는 만남, 거의 로미오와 줄리엣 급으로 만나면 만날수록 파멸이라더니!! 특히 남자가 성격이 더러워서 여자가 고생만 한다 간다던데 아주 족집게야 그래, 누구누구 씨 덕분에 끝까지 못 들었지만!!”

 

‘이런’ 제너럴은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물론이요 거기에 덤까지 얹어 말의 탄환을 쏟아내는 루엔을 놀랜 토끼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가 이렇게 화내는 건 정말로 처음 보는데, 아무래도 그녀에겐 이 싸움이 이제까지 참아온 화를 터뜨리게 된 계기가 된 모양이었다.

 

“야 씨 내가 잘못했다고!! 그러니까 문 열어!!”

“이 세상에 누가 사과를 그딴 식으로 해?! 네 자존심만 자존심이고 내 자존심은 액세서리냐?!”

“아!! 진짜!! 문 한번 열어 보라는 게 그렇게 고깝냐?! 내가 불쌍하지도 않냐고!!”

 

오. 혹시 지금 제가 뭔가 환청을 들은 걸까. 제너럴은 제 볼을 꼬집어봤지만 이건 꿈이 아니었다. 설마 그 데스페라도의 입에서, 자기가 불쌍하지도 않으냔 말이 나오다니. 내일은 해가 남쪽에서 떠도 놀라지 않을 테다. 그건 그렇고. 원래도 잘 알고 있긴 했지만, 새삼 에소루엔 로시스라는 여자가 얼마나 대단한 여자인지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이 세상에서 데스페라도가 저렇게 화를 내면서라도 사과하려고 하는 인물은, 그녀뿐일 테니까.

 

“안 불쌍해! 꺼져!”

 

쾅. 이번에는 제 쪽에서 먼저 문을 두드린 루엔이 소파로 돌아왔다. 이게 끝인가? 데스페라도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는데. 불안해하는 제너럴과 달리 루엔은 아까전과 똑같은 자세로 앉아 아까 읽던 신문을 펼칠 뿐이었다.

 

“아, 미안해요 시끄러웠죠? 마저 일 하세요 제너럴”

“네? 아… 으음. 네”

 

이런 상황에서 일을 하라는 건 가시방석에 앉아있으라는 건데. 눈치를 보던 그가 책상에 앉아 서류를 들자, 문 밖에서 데스페라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올 때 까지 여기 서 있을 거다”

 

저건 경고인가? 아니면 반성하는 의미에서 서있겠다는 건가? 제가 아는 데스페라도라면 당연히 전자였겠지만, 오늘은 평소와 달리 목소리에 독기가 없었다. 제너럴은 루엔에게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겠냐는 듯 눈짓을 주었지만, 그녀의 태도는 단호했다. 대답 한마디 않고, 못들은 척 페이지를 넘기는 그녀는 화라도 삭히는 중인지 간헐적으로 입술을 물었다 놓을 뿐이었다.

 

‘뭐, 내가 뭐라고 할 일은 아니겠지’

 

놀란 가슴을 달래고 서류에 도로 시선을 돌린 그는 방해받은 일들을 차근차근 처리해나갔다. 10분, 20분, 30분… 시간이 갈수록 처리해야 할 서류는 줄어들고 처리한 서류는 늘어나가고 있었지만 제너럴은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 참”

 

그리고 정확히 45분경과 후. 신문을 내려놓고 일어선 루엔이 방 밖으로 나갔다.

데스페라도는 정말 제 말대로 가지 않고 거기 서있었던 모양이다. 닫힌 문 너머로 들려오는 대화는 아까 전처럼 격렬하진 않았지만, 말소리가 빠르고 공격적이었다. 2차전이라도 하면 큰일이겠지만, 이번엔 데스페라도가 거의 말을 않고 듣고만 있으니 괜찮을지도. 서류를 하던 펜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문만 바라보던 제너럴의 표정이 점점 초조해졌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들어온 루엔의 표정은 환하다 못해 빛이 번쩍번쩍 나고 있었다.

 

“제너럴, 신세 많았어요. 이만 갈게요”

“아. 네… 음, 또 놀러 오세요”

“네! 다음에 올 땐 맛있는 거 사올게요!”

 

‘잘 풀린 모양이네’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며 안도한 제너럴은 긴장이 풀려 책상에 엎어지고 말았다. 또 놀러오라곤 했지만, 이런 일로 놀러오는 건 두 번은 사양하고 싶다. 겨우 마음 놓고 서류에 집중할 수 있게 된 제너럴은 나중에 데스페라도를 만나면 제대로 불평을 하기로 하고 도로 허리를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조금 슬픈 사실을 말하자면, 그렇게 극적으로 며칠 만에 끝난 그 해프닝이 마이스터와 제너럴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기억으로 남은 것에 비해 당사자인 두 사람에게는 ‘그런 일이 있었지’라는 정도에 그쳤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