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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답
written by Esoruen
나는 어머니의 뱃속을 모르고 태어난 아이었다.
어머니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 그 어떤 생물이 난자 없이 태어날 수 있단 말인가. 다만 나는 오직 어머니의 난자와 아버지의 정자만으로 만들어진, 그러니까 최대한 효율적인 방법으로 태어난 아이일 뿐이었다.
나의 자궁은 아버지의 실험실 구석에 있는 인큐베이터였다.
실험관에서 정자와 난자를 섞은 것도 아버지, 인큐베이터에 옮겨 나를 돌본 것도 아버지, 그리고 처음으로 양수 대신 만든 인공 배양액에서 나와 바깥 공기를 들이마셨을 때 나를 안고 있었던 것 역시 나의 아버지. 어머니는 그동안 무얼 했느냐, 라고 묻는다면. 나는 간단히 대답해 줄 것이다. 총통을 위해 싸우고, 아버지를 위해 싸우고, 매일 나에게 와 인사를 건넸다고.
‘텔루르’
나의 이름은 이 열차의 주인인 총통, 테슬러님이 지어준 것이었다. ‘이 열차에서 처음 태어난 인간이니, 내가 이름을 붙여 주는 게 당연하지’ 총통의 주장은 어딘가 허술했지만 아버지도 어머니도 딱히 반발하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누가 생각해도 똑똑하고 손재주가 좋았지만 이름을 짓는 것에는 재주가 없었고, 어머니는 전투는 귀신같이 잘하지만 좋은 이름을 많이 알지는 못했으니까. 아버지 쪽은 잘 모르지만, 아마 어머니는 이상한 이름만 아니면 괜찮다고 나온 모양이라 결국 내 이름은 총통이 짓게 되었다.
텔루르. 나는 나의 이름이 싫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는 나를 ‘작은 셀렌’ 이라던가 ‘아가’ 라고 불렀고, 어머니는 ‘텔’이라고 불렀다. 얄궂게도 내 이름을 가장 많이 부르는 것은 작명을 해 준 총통과 그의 오른팔, 코일 대위 정도뿐이었다.
“텔루르?”
“아, 네?”
아버지가 읽으라고 주셨던 책에 너무 집중한 탓일까. 나는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도 모르고 책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몇 번을 불렀는지 알아?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날 부른 것은 코일 대위였다. 내가 주로 ‘삼촌’ 이라고 부르는 그는 평소엔 어머니 대신 내게 사격을 가르쳐 주거나 간단한 호신술을 알려주기도 했다. ‘넌 어차피 군인이 아니니, 이런 걸 쓸모없겠지만’ 그는 싸움에 관한 걸 가르쳐 줄 때 마다 그런 소릴 했지만, 난 그다지 그 말에 공감 할 수 없었다.
이 열차는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달리고 있고, 내 어머니도 그러기 위해 매일 싸우고 있는데 내가 군인이 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어디 있다는 말인가.
물론 나는 군인이 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아버지와 같이 훌륭한 의사가 되어, 이 열차의 두 번째 군의관이 되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하지만 난 아직 배울 것도 많았고, 수술대에 서기엔 너무 어렸다. 그러니 군의관으로서, 완전히 한 사람 몫을 하기 전에는 내 몸은 내가 지킬 수 있게 공격에 대응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리고 만약에 경우에는, 총을 들고 나서야겠지.
“그냥, 책을 읽고 있었어요”
“그걸 물은 게 아니잖아? 그 자식… 아니 너희 아버지가 찾아. 그리고 왜 여기서 읽어? 네 방에서 읽을 것이지”
“어머니가 올까 해서…”
‘아하’ 코일 대위는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오늘도 어머니는 전장에서 활약 중인 걸까. 이제 난 그의 표정만 봐도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벌써 이 열차에서 산지도 8년이 넘었으니, 당연한 거 아닐까?
“셀렌은 밤이 되어서야 돌아올 거야”
“그런가요?”
“어쨌든, 얼른 가봐. 뭔가 급한 일 같던데”
아버지에게 급한 일이라는 게 있을까. 코일 대위가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닌 건 잘 알았지만, 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기본적으로 아버지는 수술, 아니 개조에 관한 일 외엔 나름 여유 있는 사람이었는데. 날 급하게 찾다니. 설마 실습이라도 시켜줄 생각인 걸까.
“감사합니다, 가볼게요”
“그래. 역시 정중해서 좋네. 셀렌이 교육은 제대로 시켜서 다행이야”
후우. 한숨 쉬는 그를 지나치자, 저 말이 귀에 달라붙어 머릿속 까지 파고들었다. 다행이야, 라. 무엇이 그렇게 다행이라는 걸까. 다행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온 나지만 도대체 다들 무엇에 그리 안심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의 교육은 사실 그다지 꼼꼼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수업은 그저 매일 아버지 옆에 붙어 지식을 습득하는 내게 와, 기본적인 상식이나 사격을 가르쳐 주기만 할 뿐. 체계적이거나 분석적이지 않은 어머니의 교육은, 빈틈없이 날 가르치는 아버지에 비하면 커다란 구멍으로 이뤄진 그물같이 허술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어디가 ‘제대로’ 라는 걸까. 어머니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정말로 그저 궁금했을 뿐이었다.
병사들이 쉬는 휴게소를 나와 엔진실, 창고까지 지나면 그곳에 아버지의 방이 있다. ‘의무실’ 그렇게 쓰여 있지만 사실은 ‘실험실’에 가까운 그 방은 내가 태어난 장소이기도 했다.
똑똑. 노크를 하자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
“저에요”
“아아, 어서 와!”
들려오는 대답은 전혀 급해 보이지 않았다. 역시 코일 대위가 속은 거였구나. 한숨을 쉰 나는 조용히 문을 열었다.
“어서 와, 아들”
아들. 아주 당연한 호칭. 나를 만들고, 내 유전자의 반을 물려준 존재가 나를 부르는데 저 이상으로 좋은 호칭이 있을까. 그런데 어째서인지 난 저 말이 어색했다. ‘아가’ 그리고 ‘작은 셀렌’ 쪽이 더 익숙한 내게 아들이라는 명칭은 실험용 샘플에 붙인 임시 이름 같은, 너무나도 덧없는 말처럼 들렸다.
“부르셨어요?”
“그래. 잠시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 말이야, 이리 와”
엉망으로 어질러진 책상 앞에 앉아 손짓하던 아버지는 가까이 다가온 내 얼굴을 대뜸 두 손으로 감쌌다. 도수 없는 안경이 내 피부에 닿을 정도로, 얼굴을 바짝 붙인 아버지는 즐거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넌 중위를 쏙 닮았어, 작은 셀렌”
셀렌. 내 어머니의 이름.
아버지는 곧 잘 나를 ‘작은 셀렌’이라 부르면서도, 어머니를 부를 때는 언제나 ‘중위’라는 직책을 썼다. 물론 그건 어머니도 마찬가지라서, 아버지는 늘 어머니에게 ‘디스티’ 라고 불리기보다 ‘군의관’이라는 직책으로 불렸다. 보통, 사랑하는 사이라면 이름을 부르는 게 정상일 텐데. 책에서 그렇게 배운 난 혼란스러웠지만, 두 사람에게 자세한 것을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도와줄 일이 뭐에요?”
“아아. 여기 이 서류들. 종류별로 좀 나눠. 진료록이라서, 너 아니면 읽을 수 있는 녀석이 없거든. 이히히”
“알았어요”
이런 일 정도라면 얼마든지 도와 줄 수 있다. 나는 글을 깨우치며 가장 먼저 배운 게 의학에 관한 것이었고, 열차 안의 길은 가끔 헷갈릴 때가 있어도 사람 몸의 뼈 이름은 완벽하게 외우고 있는 아이었으니까.
그런 건 정상이 아냐. 한 병사는 내게 그리 말했지만 나는 이렇게 반박했다. ‘제 입장에선 아저씨도 정상이 아니에요’ 물론 저건 대들려고 한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내 입장에선, 이두박근과 삼두박근의 정확한 위치도 모르는 것이 더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아버지”
“응?”
“부부는 서로 좋아해서 결혼한 사이를 말하는 거죠?”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아버지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아, 이건 별로 좋은 징조가 아니다. 괜히 무서워 진 나였지만, 한번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노릇 이었다.
“뭐 보통은 그렇지”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하나요?”
사랑. 개념이 애매한 단어를 내뱉을 때면 언제나 혀끝이 간질간질하다. 무언가를 열심히 쓰던 아버지는 펜을 멈추고 가만히 있다가, 활짝 웃어보였다.
“모르겠군”
“모르겠어요?”
“그래. 내 머릿속에 없는 개념을 알려줄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히히”
아버지도 모르는 것이 있다니. 그건 내게 작은 문화충격이었다. 열차 밖을 모르는 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은 아버지였고, 실제로 아버지는 모르는 게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박식했다. ‘의사니까 당연한 거야’ 어머니는 그렇게 평가했지만, 나에게는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 작은 신. 그것이 아버지였는데.
“뭐, 그래도 내게 있어서 특별하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지. 너를 만들 때, 그러니까 네 반을 이룰 상대를 고르라고 하면 역시 중위밖에 없었어. 아니, 어쩌면 중위가 아니면 안 되니까…”
무언가 열심히 대답을 늘어놓던 아버지는 결국 입을 닫았다. ‘나도 늙었나?’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나는 일부러 못 들은 척 해주었다. 내가 공부 다음으로 잘하는 것은 남의 눈치를 보는 일이었으니까.
“뭐, 대강 그렇지. 사랑까지는 아니지만 나름의 애착은 있어. 중위 쪽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궁금하면 물어보는 게 어때?”
“…네”
어머니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까. 아니, 어머니라면 잘 알 것이다.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니까. ‘모성애’라고 하는 감정이 분명히 존재하는 어머니는 무엇이든 아버지 보단 나은 대답을 해 주겠지.
‘제 배로 낳은 것도 아닌데 모성애가 생기나?’
누군가는 저런 무식한 소리를 했지만, 고통이 애정의 전부가 아님을 아는 나는 어머니의 모성애를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버지와 총통이 증언해준 바에 따르면, 어머니는 인큐베이터 속 나를 지켜보거나 말을 거는 등, 나의 탄생 때부터 관심과 애정을 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그 인공자궁에서 나오게 된 후, 네 발로 기어 다니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머니는 나를 서툴지만 다정하게 사랑해 주었는데.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자장가를 불러주는 건 언제나 어머니의 역할이었다. 내 옷의 매무새를 고쳐주는 것도, 신발 끈 묶는 법을 가르쳐 준 것도 어머니였다. 내 회색 머리카락을 예쁘다고 말해주는 것도 어머니고, 자신과 쏙 닮은 눈을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다 내 어머니였다.
탄생은 비록 아버지가 다 책임졌을지 몰라도, 날 자식으로서 사랑해 준 것은 어머니 쪽이 더 크다. 그런데 감히, 내 어머니를 의심하다니. 나는 그것이 싫어, 더더욱 어머니에게 살갑게 굴었던 것 같다.
“여기, 정리 끝났어요. 아버지”
“그래, 이만 가 봐도 좋아”
오늘은 전투가 있으니, 대량의 개조수술이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언제나 치료와 함께 제멋대로 상대를 개조하곤 했으니, 오늘은 아주 바쁜 날이 될 것이다.
얌전히 방을 나온 나는 어머니를 기다리기 위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책을 두세 권 쯤 읽고 나면 어머니도 와 있을 것이다’ 나답지 않게 그런 불확실한 예측을 해 보았다.
“텔”
나는 언제 잠들었던 걸까.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머니 품에 안겨있었다. 제국군과의 싸움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다행히 조금도 다치지 않은 것 같았다. 다행이다. 안심하고 한숨을 내쉬자 다정한 목소리가 물어왔다.
“졸려? 더 잘까?”
“아니, 괜찮아요”
“다음부터는 방에서 자. 여기서 자면 감기 걸려”
“죄송해요”
그러고 보니 이제 슬슬 추워지는 계절이었다. 나는 병에 잘 걸리지 않게 태어났으니 감기에 걸릴 일은 없겠지만, 어머니의 걱정에 토를 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 난 그저 사과의 말만 내뱉었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듯. 죄송해요, 라고.
“어머니”
“응?”
“어머니는 아버지를 사랑해요?”
앞뒤를 다 잘라먹은 내 질문에 어머니는 놀랍게도 당혹스럽단 표정을 지어보였다. 언제나 인형처럼 표정이 없는 어머니는 유일하게 내 앞에서만 여러 표정을 짓곤 했지만, 이렇게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은 적은 없었다.
“갑자기 그건 왜…”
“그냥. 궁금했어요. 그것뿐이에요”
“으음”
잠시 생각에 빠진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아, 역시 어머니마저 모르는 걸까. 그렇게 낙담할 때.
“사랑한다고 하기엔, 역시 무리지”
“무리라고요?”
“그래. 그 사람은 사랑을 모르니까”
어머니는 딱 그 말만 하고 입을 다물었다. 나는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쩐지 마음으로 어머니의 마음에 공감하고 말았다. 머리로는 알 수 없는데 가슴으로는 알 수 있다니. 지나치게 문학적인 이야기였지만 나는 내 감정을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어서오세요, 엄마”
뒤늦게 인사를 건네자, 어머니는 ‘다녀왔어’ 라며 내 볼에 입을 맞췄다. 약간의 피 냄새와 화약 냄새. 내가 기억하는, 내 모친의 냄새.
불가능 한 일인걸 알지만, 나는 가끔 어머니의 자궁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모르는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는 호기심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어머니에게 더 사랑받고 싶고, 그 심장소리를 들으며 세포분열을 하고 싶었다는 허무한 욕심일까.
뭐, 어느 쪽이던 상관없지만. 나는 이렇게 어머니의 품에 안겨있으면,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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